[고규홍의 식물이야기] 재상이 나무를 심은 뜻은 기사의 사진

충남 아산에는 조선 전기의 명 재상 맹사성(孟思誠·1360∼1438)의 옛집이 있다. 고려 무신 최영 장군이 손주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다.

한 시대를 호령한 재상의 집이라 하기에는 초라하다 할 만큼 작은 이 집의 마당에는 주인의 큰 삶과 뜻을 증거하듯 융융하게 자란 한 쌍의 은행나무가 있다. 맹사성이 이 집에 들면서 손수 심고 애지중지 키운 나무다. 두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어서 쌍둥이 은행나무, 쌍행수(雙杏樹)라고 부른다.

같은 시기에 심은 나무지만 600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자람이 서로 달라, 한 그루는 35m까지 자랐지만 다른 한 그루는 그보다 5m나 작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 크고 오래된 축에 속한다.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은행나무 줄기는 부러지기도 했고, 썩어 문드러진 흔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도 거목(巨木)의 기품을 잃지 않은 이 나무는 해마다 두 가마 정도의 열매를 맺을 만큼 여전히 생명력은 왕성하다.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가 있는 맹사성 고택을 맹씨행단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침을 베풀었다는 데에서 행단이라 한 것이지만, 맹사성이 살아 있을 때에는 사람 키를 겨우 넘는 작은 나무였을 게다. 맹사성이 나무를 심은 건,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100년 200년이 흐른 뒤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베풀 누군가를 위해 몸소 축대까지 쌓으며 행단을 꾸민 것이 틀림없다.

맹사성이 심은 나무는 또 있다. 이 집 뒷동산에 자리한 구괴정(九槐亭) 앞의 느티나무다. 이 정자는 맹사성과 동시대에 활동한 황희, 권진 등 세 명의 정승이 나랏일을 논했던 정자여서 삼상정(三相亭)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백성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들녘을 가까이에서 내다볼 수 있는 동산 마루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었다. 제가끔 세 그루씩 모두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 가운데 일곱 그루는 세월의 흐름 따라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그나마 두 그루는 세월의 풍상에 앙상하게 남아 백성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살림살이를 걱정한 정승들의 훌륭한 뜻을 지켜주고 있다.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기보다 백성의 살림살이와 나라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직수굿이 가꾸었던 옛 청백리의 큰 뜻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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