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그림] (34) 지고 넘어가야 할 나날들 기사의 사진

‘보부상’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다. 둘 다 조선의 떠돌이 장사치다. 봇짐장수는 부피가 작은 비단, 구리, 수달피 등을 보자기에 싸서 다녔고, 등짐장수는 부피가 큰 어물, 소금, 토기 등을 지게에 지고 다녔다. 장 따라 부랑하는 그들은 대개 홀아비나 고아였다. 상민(常民)축에 못 들어 멸시 받은 존재다.



그릇 파는 등짐장수가 잠시 다리쉬임한다. 왼다리를 주무르는 그의 표정이 피곤에 절었다. 짚신에 들메끈을 묶고 바짓가랑이에 행전을 쳤다. 먼 길을 앞둔 차림새다. 갈 길이 아득한데 다리는 무거우니 패랭이에 꽂힌 담뱃대에 연초라도 쟁여 한 대 빨면 나아질까. 등에 진 짐이 어느덧 천근만근, 짧은 지게 목발에 의지하는 신세가 오늘따라 서럽고 야속하다.

지게에 동여맨 질그릇은 자배기와 소래기다. 장독 뚜껑으로 쓰거나 물 퍼 담는 옹기들이다. 그릇 이름은 용도나 모양에 따라 갖가지다. 투가리, 옹배기, 방퉁이, 옴박지, 이남박, 맛탱이…. 동네 아이 별명 부르듯이 불렀다. 반질반질한 오지그릇과 달리 질그릇은 구울 때 솔가지 태우는 연기 그을음이 묻어 칙칙한 회색빛을 띤다. 등짐장수 행색이야 그보다 나을 게 없다.

고단한 이 사내의 쓸쓸한 옆모습은 19세기 화가 권용정이 그렸다. 수수한 필치에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오라는 데 없이 다리품만 부산했던 등짐장수지만 그래도 그네들이 부른 타령에는 익살이 넘친다. ‘옹기장사 옹기짐 지고 옹덩거리고 넘어간다∼사발장사 사발짐 지고 올그락 달그락 넘어간다∼’ 넘어가기 힘들어도 넘어야 하는 등짐장수의 날들이 여느 삶과 무에 다른가.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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