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3) 무명작가 10년… 가난·고난의 세월

[역경의 열매] 유현종 (13) 무명작가 10년… 가난·고난의 세월 기사의 사진

무명작가 10년의 세월은 또 다른 가난과 고난의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하는 연단의 기간이었다. 작가만 되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해방되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한테까지 돌아오는 발표 지면이 없을 뿐 아니라 작품을 발표해도 신인이기 때문에 형편없는 원고료를 받아야 했다.



문제작을 썼거나 인기작을 써서 언론, 출판계나 독자들의 검증을 받지 못했으니 내게 기회가 올 리 없었다. 검증을 받으려면 일단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하나 받아서 주목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수입이 좋은 작가도 아닌데 결혼한다 하니까 처가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겨우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 밑 문간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아내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도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들으면 눈물을 찔끔거린다. 신혼살림 가구는 두 개밖에 없었다. 사과궤짝으로 만든 부엌찬장 하나와 그때 처음으로 나오던 철제 캐비닛 하나가 전부였다. 캐비닛은 이부자리를 넣고 옷가지도 걸어 놓는 다목적 장 노릇을 했는데 넣어둘 게 변변찮아 언제나 텅 빈 상태였다.

창문으로 햇빛이 귤색으로 비쳐들어 오던 어느 초가을 오후였다.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청아하고 아름다운지 우리 부부는 반했다. 하루 지나 이틀 지나 합창으로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더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수십, 수백 마리가 모여 우는 것처럼 들려와 캐비닛 뒤쪽 구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번식력이 강한 귀뚜라미는 그곳을 보금자리 삼아 새끼를 치고 합창을 하는데 텅 빈 캐비닛이 확성기 구실을 해 메아리까지 만들어주며 울음소리를 증폭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쓸어내고 쫓아내도 소용없었다. 하루만 지나면 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방에, 그것도 고적한 가을밤에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는 낭만적인 게 아니라 끔찍한 가난의 대합창이어서 잊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익산 금마에 있는 복음교회 전도사로 있던 친구(백도기 목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더위를 못 참겠으면 내려와 피서도 하고 작품도 쓰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고교시절 장편소설을 내놓아 천재작가로 지방에서 칭송을 받던 문우였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군에게 총살을 당해 순교한 목사님이었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아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면서 한달 쯤 내려가 있겠다고 했다.

그는 책이 많았는데 한쪽 벽에는 문학관련 서적, 한쪽 벽에는 기독교 관련서적이 꽉 차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무심코 책상에 있던 성경책을 펼쳤다. 그랬더니 마태복음 26장 14∼16절이 눈에 들어와 꽂혔다.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은 삼십 데나리온에 팔았다는 것인데 삼십의 가치는 대체 얼마나 될까. 갑자기 궁금해져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은 삼십이면 목욕할 때나 발 씻을 때 사용하는 고급향유 한 근 값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값이 고작 향유 한 근 값이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이건 소설감이란 생각이 강하게 일어났다. ‘소설 유다행전’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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