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4) ‘연개소문’ 신문연재… 인기작가 반열

[역경의 열매] 유현종 (14) ‘연개소문’ 신문연재… 인기작가 반열 기사의 사진

예수님이 메시아로 소문나는 게 두려웠던 바리새 유대인들은 당국에 고발하면서 일부러 예수의 몸 가격을 은 삼십으로 평가절하했다. 하찮은 인물이라고 하기 위해 매긴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유다는 왜 스승을 배신했을까. 돈이 탐나서였을까.

죽은 자도 살리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며 여러 번 이적을 보일 때도 곁에 있었고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실 때 베드로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도 공감하며 예수님 곁에 있던 유다가 왜 배신했을까.

나는 유다의 배신을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 입장에서 파헤쳐보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교회를 떠난 채 돌아가지 않은 나도 유다 같다는 자괴심이 일어 용서를 빌기 위해 쓴 소설인데 의외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종교소설로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문학적인 작품으로 인정해준 게 고마웠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무명생활의 끝이요 이름 있는 작가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인증서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장편소설을 문학지에 연재해 달라는 청을 받았다. 29세 때였다.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어느 이름 없는 농사꾼 일가의 가족사를 ‘들불’이란 제목으로 연재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유신이 선포되던 70년대 초였다. 이 소설은 진주교도소에 있던 김대중씨가 옥중서신에 감동받은 소설이라고 해 재야에서, 옥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운동권에서는 의식화 교육의 입문서로 읽혔고 특히 386세대의 필독서처럼 널리 읽히게 되었다.

‘들불’의 성공으로 33세에 처음 메이저 신문의 청탁을 받아, 그것도 역사소설인 ‘연개소문’을 장장 4년간 연재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내가 잘 아는 지인들은 연개소문이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한 독재자라며 연재 끝날 때쯤엔 박 정권도 문 닫을 거니까 잘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났는데도 박 정권은 멀쩡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연개소문을 애독하고 고구려의 영광사를 통해 잘 그려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이현령비현령이었다. 그는 연개소문을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후 내가 ‘대조영’을 발표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제공한 분이 그분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나는 ‘끼’가 많아 항상 주체치 못하고 산 듯하다. 그 끼란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연극 영화 드라마에 모두 끼가 있어 다 간섭하고 다녔다. 메이저 신문에 연재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수입을 보장받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어머니 병환으로 목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침 MBC TV가 창사 3주년 기념 매일 연속극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상금은 200만원. 당시엔 괜찮은 집 한 채 값이었으니 거금이었다. 소설과 드라마는 다르다. 소설 잘 쓴다고 드라마도 잘 쓰고, 드라마 잘 쓴다고 소설 잘 쓰지 못한다.

엄연히 장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드라마도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은 다년간 연극도 해본 끼 때문이었다. 내가 쓴 작품은 ‘임꺽정’이었고 마침내 당선되었다. 드라마 당선은 일거에 가난을 날려버리는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유다행전으로 큰 상을 받게 되었을 때 난 비로소 이건 나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걸 깨달았었다. 그제야 나는 하나님 손을 놓고 등을 돌린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서 탕자가 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잠시도 잊지 않고 계셨음을 깨닫고 나는 다시 교회에 나가 엎드렸다. 충성을 다해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 했던가, 매일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고, 방송 드라마까지 쓰면서 눈코 뜰 새 없어지자 교회에 또 등을 돌리게 됐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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