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이야기] 숫사자가 염치없다고? 기사의 사진

사람들은 백수의 왕답게 황금색 갈기를 날리며 초원을 달려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를 상상하며 동물원에 오지만 불행히도 보이는 것은 땅바닥에 배 깔고 누워 늘어지게 잠만 자는 게으른 사자의 모습 뿐이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왜 동물원 사자는 잠만 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동물의 왕국을 너무 많이 봐서 하는 소리다. 원래 사자의 하루는 자고 쉬고 또 자는 것이다. 사자가 수달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사냥을 한다면 아프리카 초식동물들은 제대로 남아있을까.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남은 시간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덜 움직이며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사자와 초식동물들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사자가 번개처럼 달려 먹이를 사냥하는 것은 하루 중 아주 잠깐일 뿐이고 나머지 21시간 이상을 잠을 자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냥은 더 작고 가벼운 암컷 사자들의 일이지, 숫사자의 몫은 아니다. 암컷 중에서 작고 날쌘 사자가 사냥감을 가까이 몰아오면, 몸집이 더 큰 암컷이 풀숲에 매복해 있다가 단번에 먹이를 덮친다. 이처럼 무리로 하는 사냥이 혼자 하는 사냥보다 성공률이 2배나 높다. 사냥을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중요한 일은 모두 암컷들이 맡아 하는데, 정작 먹이를 가장 먼저 먹는 것은 사냥에 참여하지도 않은 숫사자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팔자가 또 있을까 싶지만 숫사자의 삶이 보는 것만큼 마냥 편안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암사자보다 훨씬 고달프고, 치열하다.

암사자들이 태어난 무리에서 엄마, 이모, 사촌들과 평생을 함께 지내면서 보호를 받는 동안, 숫사자들은 태어난 지 2년이 지나면 어미에 의해 무리에서 쫓겨나야 한다. 이제부터 혼자 먹이를 사냥하고, 자신의 무리를 가질 때까지 다른 숫사자들과 치열한 경쟁도 치러야 한다. 숫사자의 멋진 갈기도 사실은 상대 숫사자의 날카로운 발톱공격에서 목덜미를 보호하기 위한 전투복이다.

다행히 늙은 사자가 이끄는 무리를 만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된다 해도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새로운 도전자로부터 자신의 무리를 방어해야 하고, 암컷들이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 새끼들을 노리는 하이에나, 치타도 막아내야 한다. 암컷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요구하는 것도 사실 숫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제공하는 안전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독립한 이후부터 수많은 전쟁들을 치러야 하는 숫사자들은 간혹 형제들끼리 싸움꾼 집단을 만들기도 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숫사자 무리는 끈끈한 형제애로 뭉쳐 있어서 다른 숫사자가 이끄는 무리를 연합 공격으로 탈취하고, 이후 무리를 방어하며 살아간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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