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발견] 늙어도 서럽지 않은 호박 기사의 사진

비와 햇살이 번갈아 하늘을 차지하는 동안 호박이 익어간다. 바람 부는 날에는 그 구덩이를 채웠던 인분 냄새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알을 키운 호박은 전을 부치거나, 무침을 하거나, 새우젓 넣고 볶거나, 잎을 뒤집어 쌈 싸 먹기도 한다. 늙은 호박은 산후조리에 제격이다. 호박은 어리나, 늙으나 다 쓸모가 있으니 일생이 값지다.



그런데도 호박은 수모를 많이 받았다. 아무데서나 자라는 습성 때문에 허접한 작물로 여겨졌다. 밭이 아닌 천변이나 산기슭에 심어놓고 주인이 보살피지 않아도 스스로 생장하니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모양도 백성들의 성정을 닮아 후덕하기 이를 데 없다.

시골 아이들도 호박을 좋아라 했다. 호박꽃에 들어간 벌이 꿀에 탐닉하는 동안 꽃잎을 접어 땅에 패대기치면 벌은 졸도해 있고, 꽁무니 부분을 눌러 침을 빼내는 순간 승리의 의례는 마무리된다. 어린 호박에 새긴 욕설이 커지면서 동네에 작은 다툼을 몰고 오기도 했다. 호박꽃도 꽃이고, 호박도 작물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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