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5) 심근경색 응급실행… “올 게 왔구나!”

[역경의 열매] 유현종 (15) 심근경색 응급실행… “올 게 왔구나!” 기사의 사진

오래 자리보전 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병원 영안실에 모시지 못하고 초상을 단독주택인 집에서 치렀다. 서울 강남 복판, 그것도 집에서 상을 치르자 모두 놀라워했다. 남들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날마다 나가는 신문 연재소설을 두 개나 쓰고 방송 원고도 써야 하는데 모두가 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3일장을 치른다 해도 병원 영안실에서는 도저히 제 시간에 원고를 댈 수가 없었다. 쓰는 소설이 현대물도 아니고 역사물이라 연관되는 자료들을 항상 서재에서 찾아 써야 했다.

슬퍼하며 1층에서 조문객을 맞은 다음에는 서재로 재빨리 내려가 한창 사랑이 무르익은 장면을 써야 했다. 정말 바빴다. 아무려면 주일성수할 수 있는 틈도 못 내느냐고 나무라면 할 말이 없다. 억지로 내려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틈만 나면 수면보충을 해야 했다.

그 괴로움에 비례해 나에게는 인기작가란 수식어가 붙고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한 돈과 명예, 풍요로움이 따라왔다. 하지만 일에 치여 풍요로움마저 누려보지도 못했다. 1970년대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영국의 팝그룹 비틀스가 인기 정상에서 그룹을 해체한 이유를 들어보면 재미있다. 앙코르를 계속 요구하면 나중에 그룹 멤버 5명이 각각 서로 뭘 연주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곡을 연주하고 있어 놀라곤 했다고 한다. 이러고는 콘서트를 함께할 의미가 없겠다며 그룹을 해체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속적인 돈 명예 인기 성공 성취 등은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다. 해만 뜨면 사라지는 걸 끝까지 잡고 버텨보려고 기를 쓰며 산다.

“일락(溢樂)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나는 자의든 타의든 일락을 좇는 생활에 젖어 살면서도 문득문득 겁이 났다. “이렇게 잘 나가도 되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고 날 호되게 한번 치시지 않을까?” 그러나 다행히(?) 3년이 지나 10년이 되고 10년이 20년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치시지 않고 그냥 봐주셨다. 그렇게 되니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 자체가 없어졌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롬 1:26) 성경을 제 뜻대로 해석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를 내 편한 대로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이 싫다고 떠나니까 그냥 내어 버려두신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렇게 내쫓아 버리면 상종하지 않고 살든지 죽든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푸른 창공을 마음대로 솟구쳐 오르며 날개를 달고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방패연(鳶). 부러운 게 없었다. 자유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 목에 걸린 줄을 잡아당기는 걸 느끼고 흠칫했다.

이게 뭔가. 목줄이었다. 그 목줄은 누군가의 연 자세에 감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잡혀서 창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줄을 끊거나 놓아버리면 난 바람에 나는 추풍낙엽 신세가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갑자기 입원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그걸 알았다. 왼쪽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와서 응급실에 갔더니 심근경색이라는 것이었다. ‘올 게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너무 오래 날 봐주신 것이다. 용서해달라는 기도도 제대로 못 드린 채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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