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이야기] 병 치료하는 구더기·거머리 기사의 사진

더럽고 혐오스런 생물로만 여겨져 온 구더기와 거머리가 요즘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주치의’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무균 환경에서 키워진 의료용 구더기와 거머리들이다. 치료 대상 질병은 당뇨성 족부궤양이나 창상, 욕창, 버거병(손발 혈관이 막혀 썩어들어가는 질환) 등이다. 의료용 구더기와 거머리는 이런 질환으로 생긴 신체의 상처나 감염 부위를 깨끗하게 아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구더기 치료법을 보자. 의료용으로 쓰이는 구더기는 검정파리종인 구리금파리의 유충이다. 이들 파리의 유충을 상처 부위에 풀어놓으면 소화 효소를 주변으로 분비해 괴사(죽은) 조직을 액화시킨 후 먹어치운다. 소화효소는 각종 성장인자(알란토인, 중탄산암모늄 등)를 포함하고 있어 새살을 돋게 하고 항균 기능도 한다.

구더기가 상처 치료에 사용된 것은 역사가 길다. 200여년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야전의들은 구더기의 상처 치유력을 기록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구더기가 부상한 병사들의 상처 치료에 이용됐다. 구더기 치료는 1940년대 현대식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사라졌지만 요즘 항생제 내성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임상시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분당서울대병원과 한일병원 등 10여곳의 성형외과 영역에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허찬영 교수는 “하지만 너무 많은 수의 구더기를 상처 부위에 사용하면 건강한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으니 위생 지침의 표준 원칙에 따라 적절하게 훈련된 전문가에 의해서만 시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거머리는 수지 접합술과 버거병, 당뇨발, 혈관염, 부종 치료 등을 주로 하는 성형외과와 한의원에서 주로 이용된다. 피를 빨 때 거머리 침샘에서 분비되는 ‘히루딘’이라는 단백질 성분이 염증을 가라앉히고, 미세 혈관을 재생하는 효과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강계원 KAIST 명예교수는 한국산 참거머리의 침샘에서 생리활성 물질을 분리해 ‘거머린’이라는 이름을 붙여 학계에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쓰이는 의료용 거머리는 대부분 영국 등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거머리 박사’로 통하는 한동하한의원의 한동하 원장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양방 의료기관에서 버거병 진단을 받은 환자 64명을 대상으로 거머리 침법을 적용한 결과, 81%에서 완치에 가까운 치료 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4년 구더기와 거머리를 ‘의료 도구’로 공식 승인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물 치료 기술에 관한 규제 조항이 없어 이들을 사용한 치료법은 아직까지는 의사들의 진료행위로 분류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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