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하루를 살아도 본분 잊지 않는 꽃 기사의 사진

꽃 중에도 ‘하루살이’로 불리는 것이 있다.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한낮이면 시들 만큼 짧은 순간을 살아서 영어로도 ‘Dayflower’로 불리는 닭의장풀꽃이 그것이다. 닭장 근처에서 자란다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우리 토종 식물이다. 꽃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해서 달개비라는 별명도 가졌다.

대개는 땅에 납작 붙어 있지만, 때로는 50센티미터 이상으로 자라기도 한다. 대나무처럼 줄기가 쭉쭉 뻗어 오르다가 줄기 끝에서 파란색의 청초한 꽃을 여름 내내 피운다. 흔한 까닭에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꽃만큼은 여느 꽃 못지않게 화려하다. 특히 파란색 꽃이 흔치 않아서, 닭의장풀꽃의 파란색은 돋보일 수밖에 없다. 꽃 피어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빼면 더없이 좋은 꽃이다.

이 예쁜 꽃이 일찍 시드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세상의 모든 꽃은 오직 단 한 가지의 목적, 즉 씨앗을 맺기 위해 피어난다. 거개의 꽃은 그래서 씨를 맺기 위한 꽃가루받이를 마치면 시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닭의장풀은 꽃이 피어나는 순간 이미 꽃가루받이를 마친 경우가 무려 90%를 넘는다. 꽃봉오리 안에서 서둘러 꽃으로서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목적을 이룬 꽃이 오래 살아야 할 까닭은 없다. 한 나절조차도 닭의장풀꽃에는 불필요한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닭의장풀꽃은 곤충을 유인하고도 남을 만큼 화려하다. 꽃송이의 선명한 파란색은 물론이고 꽃송이 안쪽의 노란색 꽃술도 그렇다. 화려하게 꽃을 피워 곤충을 끌어들여야 할 까닭이 전혀 없음에도 닭의장풀은 애면글면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여섯 개로 이루어진 수술이 맡은 각각의 역할을 살펴보기에 이르면 이 꽃이 피어난 목적은 더 아리송해진다. 위쪽의 수술 4개는 노란색 머리를 가졌지만 꽃가루가 없는 헛수술이다. 꽃가루는 나비의 더듬이처럼 길게 뻗은 아래쪽의 수술 2개만 갖고 있다. 벌이나 나비가 찾아와 자연스레 착륙하게 되는 자리다. 자연스레 곤충의 다리에 꽃가루가 들러붙게 돼 다른 꽃으로 날아가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꽃가루받이를 이루기에 알맞춤한 역할 분담이다.

꽃가루받이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뿐 아니라 곧 시들어 떨어져도 아쉬울 게 없도록 진화한 꽃이거늘 닭의장풀은 진화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남은 희미한 옛 기억을 떠올리고, 화려했던 옛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채 한나절도 살지 못하고 지는 꽃이지만 끝없이 눈길을 끄는 닭의장풀꽃이 기특하고 고마운 까닭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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