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5) 달빛은 무엇하러 낚는가 기사의 사진

억지꾸밈이라곤 전혀 없는 그림이다. 휑한 공간이 오히려 시원하다. 듬성듬성한 소재 배치가 수선스럽지 않아 정겹다. 심심풀이로 그려서일까, 애쓰지 않은 천진함이 정갈한 산수인물화다. 화면 위에 흘려 쓴 초서 두 자는 ‘현진(玄眞)’이다. 그린 이의 이름인데, 호인지 본명인지 모른다. 미술사의 갈피 속에 숨어버린 화가다.

쓰러질 듯 기우뚱한 바위는 자못 험악하다. 눈을 부릅뜬 귀면(鬼面)같다. 아가리를 벌려 곧 집어삼킬 기세인데, 그 아래 노인은 아랑곳없이 낚싯대 지그시 잡고 흐르는 물에 눈길을 돌린다. 달빛은 교교하고 물이랑은 보채지 않는다. 연푸른빛으로 어룽진 달무리가 강물에 풀려 떠다니고 밤하늘은 구름 지나간 자취를 지운다. 외톨이 노인을 마중하는 보름달만 오롯할 뿐, 만물이 숨죽인 적요한 밤이다.

은자의 하루는 차 석 잔에 저물고 어부의 생애는 외가닥 낚싯대에 달렸다고 했던가. 노인의 낚시놀음에 고단한 생계는 보이지 않는다. 조바심 나게 입질하는 물고기야 안중에 없다. 허심하게 드리운 낚시에 무엇이 걸려들까. 밭가는 농부가 흙을 뒤적여 봄볕을 심듯이 강가의 낚시꾼은 달빛을 낚는다. 오늘 사람은 옛 달을 보지 못해도 오늘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으니 달빛을 낚으면 연연세세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을까.

고려 문인 이규보는 우물에 비친 달을 노래했다. ‘산 속 스님이 달빛을 탐내/ 물과 함께 병에 담아가네/ 돌아가면 알게 되리니/ 병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짐을’ 낚시에 딸려온 달빛도 마찬가지일 터. 들어 올리면 사라지지만 세월이 궁금한 노인은 오늘도 하염없이 낚싯대를 드리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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