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김나래] 통일을 원하십니까? 기사의 사진

지난달 19일부터 사흘간 북한의 곡창지대인 신의주 일대에 폭우가 쏟아졌다. 6만4000여명이 긴급 대피하고 주민 10여명이 사망했다. 그 소식에 대북지원을 하느니 마느니 하던 한국 정부는 31일 100억원 상당의 수해 지원을 북측에 제안했다.

2004년 ‘용천역 폭발 사고’ 취재차 중국 단둥을 찾았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방중 뒤 북한으로 돌아오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가 평안북도 용천역을 통과한 직후 일어난 폭발 사고로 200명 넘게 죽고, 1500명 이상이 다쳤다. 인도적 지원이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단둥의 ‘중조우의교’를 통해 이뤄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당시 중조우의교와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묵으며 매일 밤 바라본 신의주는 한마디로 암흑천지였다. 1970년대 후반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기자로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풍경. 대형 김일성 동상에 켜 놓은 선전용 불빛이 거의 유일했는데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평소엔 꺼 놓다가 이번 사고로 외국 기자들이 몰리자 불을 켜 놓은 것 같다”던 현지 소식통의 말에 더 참담했던 기억이 난다.

2008년 가을 기독교 단체를 따라 평양 취재를 갔을 때도 그랬다. 평양 시민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비쩍 마른 모습, 군고구마를 파는 상점 앞에 줄지어서 고구마를 사 먹던 행렬, 운행 중인 자동차를 찾아보기 힘들던 외곽도로. 하나같이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생경한 그림이었다. 신의주, 평양이 그럴진대 다른 곳은 오죽할까.

짧은 방문이었지만 남북의 생활 격차가 실감났다. 통일이 되면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경험은 ‘나는 정말 통일을 원하나’ ‘통일이 되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달라져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가 됐지만, 별다른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이 고민을 다시 떠올린 건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제안하면서다. 머리 아픈 찬반 논란은 차치하고, 나는 과연 통일세를 낼 것인지 생각해봤다. 주변 반응이 궁금해 또래 여러 사람들에게도 물었는데 하나같이 시니컬하거나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지난 23일 본보와 GH코리아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연령대가 낮을수록 반대가 많았다. 20대는 68%가 반대했다. 20∼30대, 지금 자라나는 10대에게 통일의 의미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거나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몇 년 잠깐 힘들다면 모르겠지만 진짜 통일이 되면 20∼30대에겐 평생의 짐이 될 거다. 우리 세대에 안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우리 부모 세대처럼 과감하게 희생하는 세대는 하겠지만, 우리는 못 한다” “통일되면 우리도 같이 망하나요” 등 생생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결국 이 세대에게 통일 이슈는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로 다가간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세대의 고민에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답해본 적이 있었던가. ‘통일 한국’의 비전이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적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30∼31일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통일부와 당정협의를 마친 뒤 “통일세는 단순히 세금 징수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대비 논의를 시작하는 문제로 보고,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자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소 뜬금없던 대통령의 통일세 제안을 집권 여당이 나서서 백업하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여권이 공론화 과정에서 10∼30대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그래서 통일세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전에 젊은 세대가 ‘통일=고통, 부담’ 대신 ‘통일=좋은 것,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김나래 정치부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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