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수민 (2) 미국 최고 명의 수술도 실패 시력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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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에 도착하자 친구인 홍성진이 마중을 나와 우리 가족을 반겼다. 미리 연락을 해 두었기에 나는 바로 LA 안과전문의 이영재 박사를 만났다. 그분도 진찰을 해 보더니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 분은 내가 보스턴으로 간다고 하니 그곳에 있는 조셉 킴 박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우리 부부는 보스턴 행 비행기를 타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주님, 미국에 우리를 보내셨으니 수술을 받게 해 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앞으로 주님께 더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런데 조셉 킴 박사도 자신이 없다며 미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안과의 허친슨 박사를 찾아가 보라며 소개장을 써 주었다. 그러나 허친슨 박사의 검진 결과도 그동안 만난 의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실명을 기다리느니 수술을 받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허친슨 박사는 원하면 수술을 하겠노라고 했다.

“박사님, 수술 후 시력을 찾을 가능성은 몇 %나 될까요?”

“닥터 리, 실망하지 마세요. 회복될 가능성은 0.1%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0.1%를 기대하며 하는 수술이었지만 허친슨 박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 모습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6시간의 대수술이 끝나고 며칠간 안정을 한 뒤 드디어 붕대를 풀었다.

허친슨 박사도 매우 궁금한지 내 눈에 붙어 있던 마지막 거즈를 직접 떼어내며 자신의 얼굴이 보이느냐고 계속 물었다.

그러나 내게 보이는 것은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나는 신음하듯 소리를 냈다.

“다크니스 아… 다크니스.”

“닥터 리. 안타깝습니다. 저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국엔 훌륭한 맹인 교수나 박사가 많이 있습니다. 절망하지 마세요.”

허친슨 박사가 방을 나가자 아내가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시력을 점점 잃어가긴 했어도 물체를 식별하고 빛의 움직임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술 후 이것마저 잃고 말았다. 나는 절망하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이 가운데 수술비 1만5000달러를 마련하지 못해 매달 나누어 갚겠다는 사인을 하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우리 가족에 매달 학비 및 생활비로 1500달러를 주었다.

나는 일주일을 방에 박혀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서 지냈다. 신기한 것은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수도 장로도 이젠 모두 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내게 가장 소중한 빛을 빼앗아 가신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당장 화장실을 가려면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는 미국 땅에서 우울증 초기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살을 마음속에 그렸다. 평생 아내와 가족에게 짐이 되느니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보스턴 인근 노셈튼 한인장로교회 성도들이 캐나다 국경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가는데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거절을 했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폭포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승낙을 하고 자살여행을 떠나기 전 날이 되었다. 아내에게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늘이 사랑하는 아내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수 있었다.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삶을 정리하는 바로 그때였다. 어둠만이 전부인 내게 청각은 살아 있었다. 아니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휘익”하는 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더니 한줄기 빛이 나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광석화란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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