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이야기] 능청스러운 오소리 기사의 사진

날씨가 여전히 덥다고는 해도 9월에 들어섰으니 이제 가을이다. 앞으로 세 달 간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농부처럼 동물들에게도 춥고 긴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오소리도 이 기간에 열심히 먹어서 10㎏ 남짓하던 몸집을 두 배 가까이 늘려놓아야 한다. 오소리는 굴속에 먹이를 따로 장만해 놓지 않고 몸 안에 피하지방으로 저장하기도 하지만 오소리의 겨울잠은 다른 동물의 겨울잠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면 하는 동안 고슴도치나 곰은 체온이 떨어지고 심장박동수도 줄어 에너지 소모가 적지만, 오소리는 정상체온을 유지하면서 굴속에서도 잠깐씩 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그대로 진행되고 에너지도 많이 쓴다. 그래서 동면 직전에는 바람을 잔뜩 넣은 풍선처럼 통통하고 기름져 있던 오소리가 동면이 지나고 나면 체중이 30%까지 줄어든다.

3개월의 긴 잠에 들어가기 전 낙엽과 마른풀을 긁어모아 굴에 잠자리를 만든다. 오소리 굴은 중앙에 마른풀, 낙엽이 깔린 넓은 방과 여러 개의 작은 방이 터널로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한 해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쳐 사용하면서 보수와 증축을 통해 굴도 많아지고 터널도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여러 해를 거쳐 사용하는 굴이니 만큼 항상 깨끗하게 청소가 돼 있고, 수직으로 된 통풍구도 가지고 있다.

간혹 오소리 굴에 멧토끼나 여우가 동거를 하기도 한다. 능청스러운 오소리는 자신은 굴 안쪽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굴 입구 쪽 셋방을 멧토끼에게 내주어 적이 나타나면 알리는 파수꾼으로 이용한다. 더 능청스러운 점은 자신은 딱정벌레, 지렁이부터 열매나 씨앗, 쥐나 뱀, 동물 사체까지 못 먹는 것이 없지만 정작 자신은 적을 만나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아예 땅에 드러누워 죽은 척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방심한 사이에 역습을 하거나 도망을 치기 위해서다.

오소리에게 굴이 생활의 근거지이다보니 영역표시도 굴 입구에 한다. 영역 가장자리에 작은 굴을 파고 그 입구에 굴에 사는 모든 오소리들이 똥을 눈다. 자신의 영역이니 다른 오소리들에게 침범하지 말라는 표시다. 똥굴을 점검하다가 다른 무리의 수컷을 만나면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겨울을 버텨내야 하기 때문에 오소리는 가장 좋은 시기에 새끼를 낳기 위해 분만 시기를 조절한다. 짝짓기를 하고 수태가 되어도 수정란이 자라지 않고 몇 달간 자궁 안을 떠돌다가 한겨울이 돼야 자궁벽에 착상하고 이듬해 2∼4월 새끼를 낳는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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