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서정우] 욕망은 소금이다 기사의 사진

“원망수준과 기대수준이 조화를 이룰 때 사회는 안정되고 행복해진다”

욕망은 소금과 같아서 많이 뿌리면 짜고, 적게 뿌리면 싱겁다. 욕망과 소금은 잘 관리되면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대단히 유익한 요소가 되지만, 반대로 잘 관리되지 못하면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독소가 된다. 음식에다 소금을 뿌리면 그 음식은 간이 맞아 맛있게 되지만, 반대로 소금에다 음식을 뿌리면 그 음식은 너무 짜서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삶에다 욕망을 뿌리면 활기가 넘쳐 발전하지만, 반대로 욕망에다 삶을 뿌리면 그 삶은 부패하고 타락해서 망하게 된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온다”는 성경말씀은 그러한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는 욕망이 넘치는 사회도 있고 욕망이 고갈된 사회도 있다. 우리 사회는 욕망이 넘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이 넘치는 사회는 발전 지향적이지만 욕망이 넘치는 사회는 퇴보하기 쉽다. 희망은 아무리 넘쳐도 무방하지만 욕망은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면 재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 사회의 욕망수준을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넘치게 했는가.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법은 정의를 상실했고, 정치는 원칙을 상실했고, 경제는 윤리를 상실했고, 종교는 자기희생을 상실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희망의 상실이 욕망을 분출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자인 다니엘 레너 교수는 한 사회가 가지는 원망수준(Want Level)과 기대수준(Get Level)의 격차원리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한 사회의 원망수준과 기대수준이 유기적 조화관계를 유지할 때 그 사회는 안정되고 행복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회의 기대수준이 원망수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게 되면 그 사회는 ‘상승하는 기대혁명’을 앓게 되고, 상승하는 기대혁명은 ‘상승하는 좌절의 혁명’을 낳고, 상승하는 좌절의 혁명은 욕망의 분출과 같은 공격적 일탈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영상문화와 감성문화, 물질문화와 쾌락문화 등도 우리 사회의 욕망수준을 넘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각종 영상매체와 감성매체들도 그러한 현상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여기에다 가진 자들의 오만과 무절제가 그러한 경향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은 권력과 부를 과시한다. 그들의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연관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P)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행복순위는 세계에서 102번째가 된다. 우리나라의 자살수준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모범적인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층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으로 불안하다. 나라의 희망인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 아프다. 가진 자들이 좀 더 겸손했으면 좋겠다. 배운 사람들은 좀 더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솔선수범해야 한다.

사회를 운영하는 원리들은 좀 더 공정했으면 좋겠다.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인생을 절약하라”고 당부한다.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보인다”라고 설파한다. 중국의 세계적인 사상가인 노자(老子)는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다”라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욕망이 넘쳐 탐욕의 사회가 되고 있다. 욕망이 희망의 싹을 자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늦기 전에 욕망의 관리에 착수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인생을 절약해서 다함께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한 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정우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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