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牧民官은 자식도 버리라 했거늘 기사의 사진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관, 즉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律己)편 제가(齊家)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비가 고을살이를 나갈 때는 가루(家累)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가루는 처자를 두고 이른 말이다.…장성해서 결혼한 자녀들이 함께 따라가는 것은 불가하다.” (역주 목민심서. 창작과비평사)



그런가 하면 중국 전한(前漢)시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춘추시대 진나라 도공 때 대부 기해(祁奚)가 나이 많아 퇴직하려 하자 도공이 후임자 천거를 부탁했다. 기해는 기오(祁午)를 천거했다. 도공이 놀라 “기오는 당신 아들이 아니냐”고 물었다. 기해는 “적임자를 천거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아들 여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모략. 들녘)

맹목적 사랑이 부른 불행?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외교통상부 통상전문계약직(5급) 특채 파문에 휩싸여 끝내 낙마했다. 파문을 지켜보면서 이번 일이 너무 대조적이면서도 다 함께 후세에 가르침을 주는 위 두 가지 사례 중 어디에 해당될까 생각해 봤다. 목민관이 임지에 자식들을 데리고 가면 자식들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장성한 자식들은 아예 떼 놓으라는 다산의 말을 따르자면 자신이 수장인 정부 기관에 출가한 딸이 특채되도록 놓아둔 건 공직자로서 기본이 안 됐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반면에 능력이 있는 적임자라면 내 자식이라도 천거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기해의 말을 따르자면 장관의 딸이라도 능력만 있다면 특채하지 못할 게 뭐냐는 외교부 일각의 항변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일이 기해의 예를 빌려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유 장관의 공직관(公職觀)이 기해의 그것에 비추어 기울 게 없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해는 자신의 아들을 천거하기에 앞서 도공에게 해호(解狐)라는 사람을 천거했었다. 도공이 놀라 “해호는 당신과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고 묻자 기해는 “능력 있는 사람을 천거하라고 해서 그리 했을 뿐 개인적인 원한 관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고 답했다.

유 장관의 공직관이 기해의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 즉 그가 적임자인지 여부만 따질 뿐 내 딸인지 여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해당 직무 특채 1차 모집에 유 장관의 딸도 응시했지만 적격자가 없어 2차에는 응모 자격을 박사 소지자에서 석사 소지자로 낮춰 그를 합격시켰다는 소식이고 보면 기해의 예를 빌려 이해를 구하긴 힘들 것 같다. 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고관대작의 자제를 관리로 등용하는 음서(蔭敍)제도가 있던 옛 왕조시대에도 가족이나 친인척 등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곳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한 상피(相避)제도가 있었던 데 비추어 보아도 아버지가 장관인 외교부에 딸이 특채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정권에도 누 끼친 이성 마비

결국 자식에 대한 사랑이 유 장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주변 사람들의 과잉 충성이 오히려 그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안겼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맹목적이어서 누구도 난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칫 순간의 판단 마비로 자신은 물론 자식의 앞날까지도 막을 수가 있다. 지금도 흔히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는 대학 부정 입학 사건들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이번의 경우는 37년의 공직 생활에 그 정점에 오른 유 장관의 명예를 송두리째 앗아갔을 뿐 아니라 그에게 최장수 장관의 영예를 안겨 준 이 정권에까지 큰 누를 끼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집권 후반기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그런 이 대통령에겐 그렇지 않아도 김태호 총리 지명자와 장관 후보들이 도덕성 시비로 낙마한 시점에 맞춰 문제가 터짐으로써, 신속한 조치로 그걸 최소화했으나, 권력누수현상을 부추길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공자 말씀을 빌릴 것도 없이 제 가정 하나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서 나라를 다스린다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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