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 참을 수 없는 몸의 가벼움? 기사의 사진

지난주 발표된 한국은행 및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출판업은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인 반면 스포츠용품 산업은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몸을 향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는 한편으로 지식에 대한 호기심은 하강일로에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징표인 셈이다.



실제로 “성형수술을 받고 난 후 주위 사람들이 놀랍도록 친절해졌다”는 20대 여성의 고백이나 “불룩한 복부와 과도한 체중이 게으름과 무능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힘입어 몸 자체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부상하고, 소비자본주의 하에서 높은 이윤창출을 가져다주는 상품이 되고 있다. 몸짱 얼짱 열풍 속에서 스포츠·뷰티 산업이 확장일로에 있음은 이들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준다.

특기할 점은 몸의 위상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면서 ‘연기(演技)하는 자아’가 현대인의 화두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기하는 자아’란 규칙적 운동, 건강관리, 식이요법, 패션 감각 등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다듬고 전시해야 할 대상으로 자신의 몸을 인식하게 됐음을 뜻한다.

외모를 실력으로 보는 사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몸은 유전공학, 기관이식, 성형수술을 거쳐 스포츠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취사선택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몸을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수록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몸의 이미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도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의 몸에는 사회 불평등구조가 녹아들어 있다는 주장도 새겨볼 만하다. 곧 자신의 몸을 어떠한 방식으로 관리하는가, 아니면 방치하는가가 근육의 질(質)과 형태를 통해 표출되고, ‘훌륭한 외모=탁월한 실력’이 되는 사회적 맥락에서 몸은 희소가치를 지닌 유용한 자본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몸은 고정돼 있는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요 ‘퍼포먼스’로 간주되고 있다. 몸은 플라스틱처럼 조각되고, 새로운 스타일로 재창출될 수 있는 대상이 됐고, 자기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을 의미하게 됐다. 다이어트와 스포츠, 성형수술 등을 통해 몸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상의 미학화(美學化)’에 대한 육체적 증언이요, 외모를 향한 사회적 숭배이자, 나르시시즘에 갇힌 현대인의 표상을 웅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스포츠 제품은 육체를 더욱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서로 경쟁하며, 젊고 건강한 이미지를 발산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면서 시장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몸과 마음(정신)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고도소비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몸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정형화되고 획일적인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동조성과 전염성이 유달리 강한 한국적 상황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채우기보다는 몸을 만들고 얼굴을 가꾸는 데 몰입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예상된다.

정신건강과 균형·조화를

‘고전(古典)은 좋은 책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주장이 당당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 몸을 움직여 추구하는 재미 못지않게 머리와 마음을 함께 쓰며 체감하는 책읽기의 재미를 어떻게 전파할지 못내 고민이 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출판시장의 견고함과 격조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접할 때, 책 읽기를 거부하고 외모 만들기에 몰입하는 우리의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몸 건강과 마음 건강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이룬 성숙한 사회로 성큼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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