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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전정희] 다 나쁘고 다 착하다

[삶의 향기-전정희] 다 나쁘고 다 착하다 기사의 사진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놀란 얼굴로 말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산동네 계단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고, 방과 부엌이 구분 안되고 그 안으로 화장실이 있어. 방이 너무 좁아 한 사람 눕기도 힘들 정도였어. 욕조도 없고.”

딸아이는 서울 동숭동 서울사대 부설여중 1년생이다. 중학교에 진학해 새 친구 집을 방문하고 받은 충격이 컸던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학교 뒤쪽의 창신동 쪽방촌 친구였던 것이다.

딸은 태어나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집은 아파트 내부구조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결혼 직후 분당 일산 등 신도시를 돌며 살다가 최근 부모님이 사시는 명륜동으로 이사했다.

가끔 나는 동숭아트홀 낙산공원 창신동 이화장 등을 거치는 산책길을 택한다. 창신동 쪽방촌은 내 어릴 적 1970년대나 지금이나 썩 나아보이지 않는다.

쪽방촌 친구집에 놀란 딸

그리고 며칠 후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창신동 쪽방촌 투기 사건이 터졌다. “아….” 마침 구한말 민씨 일족의 실정과 매관매직 부분을 다룬 단행본을 읽고 있었고 딸아이의 얘기도 있어 분노가 일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직접 착취와 간접 착취의 차이인지…. 경술국치의 내적 요인의 본질은 권력 쥔 자, 즉 사람의 태도였을 것이다.

사람의 태도는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 가깝게는 가정에서 그 틀과 연동되어 선을 이루거나 패악을 떨게 마련이다. 대개 백성은 자신의 지형(地形)에 맞춰 살아야 하다보니 지형을 움직이는 권력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운명도 정해지기 쉽다.

그러나 의를 구하는 지도자나 백성은 지형에도 굴하지 않고 선함을 베풀며 살아간다.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 사람들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선한 이들이 많다. 근대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1907년 조선이 병합을 눈앞에 둔 시점에도 평양대부흥회를 여는 것을 보고 ‘조선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그들에게 군대와 군함을 하사하시지는 않았지만 더욱 강한 성령을 내주셨다. 하나님은 조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경시청의 박해가 따랐음은 불문가지다.

오다 나라지(1908∼80) 목사는 강점기에 아예 한국에 들어와 전도활동을 하며 한국인을 섬겼다. 당시 일본기독교교회 광주교회 다나카 선배 목사로부터 “정복자인 일본인인 내가 어떻게 한국 성도들에게 죄를 참회하라거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재한 일본인 목회만 한다”는 얘길 듣고 아예 한국어를 배워 철저하게 현지선교를 했다. 한국 이름 전영복이었다.

이밖에도 신앙으로 식민지의 고난을 극복하라고 했던 야나이하라 다다오, 한국인 피폭자를 위해 삶을 투신한 마쓰이 요시코, 식민지배의 모순을 성서적으로 비판한 가시와기 기엔 등이 의를 지키려는 선한 이들의 태도였다.

떡 한 조각의 화목을 빼앗다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다’

이 대목은 권정생 동화 ‘몽실언니’에 나온다. 어린 몽실이가 동생 난남이를 업고 동냥을 하자 여자 인민군이 죽을 끓여준다. 그러자 몽실이 ‘국군과 인민군 중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더 착한 거예요?’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품성의 문제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아낸 동화인 셈이다.

성서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낫다’고 했다. 그 화목한 쪽방집을 차지하려 들다니…. 다 나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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