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7) 대찬 임금의 그림 솜씨 기사의 사진

혹부리 바위 뒤에 들국화 송이송이 샐그러지게 피었다. 위로 거우듬하고 아래로 배뚜름하게 짝을 이룬 꽃과, 가운데 얼굴만 살짝 들이민 꽃이 잘도 어울려 건드러진 구도를 이룬다. 줄기와 잎은 짙은 먹, 꽃은 옅은 먹으로 그려 농담이 엇갈리되 활짝 핀 꽃의 낯빛은 나우 함초롬하다. 야생의 정취가 서린 참 사랑스런 그림이다.

이 알량치 않은 솜씨는 누구 것인가. 그림에 낙관이 있다. 새겨 넣기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풀이하면 ‘온갖 물줄기를 고루 비추는 밝은 달의 임자’다. 조물주에 버금가는 이런 대찬 호를 쓴 이는 나라 안에 단 한 사람, 바로 정조다. ‘개혁군주’에다 근래 쏟아진 그의 간찰 때문에 ‘성미 불뚝한 강골의 지략가’ 이미지까지 덧쓴 임금이다. 게다가 이 그림에 보이는 소곳한 서정성이라니, 팔방미인 정조의 너름새는 어림하기 힘들다.

맨 위쪽 꽃송이를 보자. 그 위에 메뚜기가 앉았다. 유월 한 철 메뚜기가 가을 국화를 찾은 까닭이 뭘까. 메뚜기는 100개 안팎의 알을 낳는다. 그래서 ‘다산’을 뜻한다. 바위는 ‘수(壽’)의 상징이고, 국화의 ‘국(菊)’은 살 ‘거(居)’ 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잇대어 해석하면 이 그림은 ‘오래 살아서 자식 복 누리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셈이다.

속뜻이야 어쨌건 그림꼴에서 늘품 있는 기량이 보인다. 바위 주변에 이삭이 작고 촘촘하게 자란 잡풀은 방동사니다. 스산한 가을 기운을 더해주는 소재다. 정조의 다른 작품 ‘파초도’도 문기가 넘친다. 임금이라 후한 점수를 얻은 게 아니다. ‘신민의 스승’이란 세평처럼 그의 문예 취향은 깊고 넓었다. 예술과 민생은 겉돌지 않는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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