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을 영감(令監)이라고 불렀다. 정2품 이상의 판서나 의정 등 당상관(堂上官)은 대감, 종2품과 정3품의 당상관은 영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판·검사와 군수 등이 영감으로 불렸다.

젊더라도 예외 없이 영감님 대접을 받았다. 군수가 행차한다는 기별을 받으면 “군수 영감님께서 방문하시는데 차질이 없게 하라”는 식이었단다. 이런 관행은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급기야 대법원이 판사를 영감이라고 부르는 관행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의 영감은 급수가 높은 공무원을 높여 부르는 말로 사용됐다.

영감은 노래 가사에도 등장했다. 대중가요 ‘잘했군 잘했어’의 가사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하략)”에는 영감이 4차례 나온다. 평생을 해로한 노부부의 잔잔한 사랑과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하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에서는 영감이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말로 쓰였다.

지난달 31일 충남 천안시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정태근 의원이 “이상득 의원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 의해 (민간인) 불법사찰이 이뤄진 것을 알고 있었다”고 공격하는 등 이 의원에 대한 비난 수위를 한껏 높일 때였다.

정두언 의원은 자유토론이 시작되자 연찬회장을 빠져나와 “영감이 지키고 앉아 있어서…이거 뭐 압력 가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의원이 자유토론에 참석해 의원들이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음을 강도 높게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무성 원내대표는 “선수로나 연세로나 당내 최고 선배이신 이상득 의원께서 눈이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데 대해 우리 모두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정 의원과 대비되는 발언을 했다.

영감은 나이가 많은 남자를 대접하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나 정 의원이 사용한 영감이란 단어의 앞뒤 문맥을 보면 존중하는 말투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당사자인 이 의원에게는 늙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영감탱이, 영감쟁이, 영감태기로 들렸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면 정치공세를 펴더라도 품위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큰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인이라면 특히 그렇다.

염성덕 논설위원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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