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발견] 과일에도 君臣이 있다 기사의 사진

명절의 차례(茶禮)를 전통문화로 이해한다면 재미있는 게 상차림의 룰이다.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두동미서, 반서갱동이니 하는 법도가 잔뜩 있다. 그런데 과일의 순서를 정하면서 왜 하필 크기가 조그맣고, 맛도 시원찮으며, 늙으면 쪼글쪼글해지는 ‘조(棗, 대추)’를 우두머리에 놓았을까.

대추의 붉은 색은 임금의 용포를 상징한다. 씨 또한 통째로 하나만 들어있는 데다 열매에 비해 큰 모양이 왕의 풍모와 비슷하다고 봤다. 나머지는 신하의 위계다. ‘율(栗, 밤)’은 한 송이에 알이 3톨이어서 3정승을 뜻하고, ‘이(梨, 배)’는 씨가 6개여서 육조 판서를 나타내며, ‘시(枾, 감)’의 8개 씨는 8도 관찰사 혹은 감사를 의미한다.

대추나무는 ‘과일의 왕’을 품은 나무답게 품격이 다르다. 잎에 햇빛이 비치면 투명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바람에 날리는 잎의 자태도 우아하다. 암수가 한 몸이고, 그루당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도 자손의 번창을 좋아하는 옛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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