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총리가 어떤 자리인데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이 난에서 ‘연탄 가는 국무총리’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지만, 대통령 다음의 고위 공직자라는 의미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불리던 총리라는 자리가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다. 몇 사람이 담소하는 가운데 “정운찬씨의 사퇴로 총리가 공석이 된 지 50일이 넘었어도 나라가 잘만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총리의 헌법상 권한은 대단하다.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특히 대통령에게 국무위원과 행정각부 장의 임명을 제청할 권한과 해임을 건의할 권한이 있다. 또 대통령의 모든 국법상 행위는 총리가 부서해야만 효력이 발생하며, 국무총리령을 제정할 권한도 갖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총리의 임면권을 가진 우리의 권력구조에서 총리가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실제로 행사한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 때 DJP 연합에 따른 김종필씨, 노무현 대통령 때 그와 전적으로 뜻이 맞았던 이해찬씨 정도가 총리다운 총리를 해봤다는 평가다. 나머지 대부분의 총리들은 명망가 출신의 얼굴마담, 대통령의 치사나 대신 읽는 대독총리, 일이 터졌을 때 대통령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방탄총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만일 총리가 자기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 할 경우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의 예에서 보듯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헤어지기 십상이다.

새 총리 후보자로 김황식 감사원장이 지명돼 국회 청문회와 동의 절차를 앞두고 있다. 지명 전에 정부 측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사이에 교감이 있었고, 지명 후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보인 바 있어 임명안의 국회 통과는 낙관해도 좋을 듯하다.

민주당의 수준 이하 논평

다만 청와대의 지명 발표와 민주당의 반응 등 일련의 과정에서 김 총리 후보를 결과적으로 너무 평가절하하는 듯한 인상을 줘 유감이다.

청와대는 총리 후보 선정의 제1 기준을 도덕성에 뒀고, 여러 대상 중 김 후보가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어서 낙점됐다는 요지로 설명했다. 청와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지난번 김태호 총리후보와 2명의 장관후보가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쓰라린 경험이 있어, 이번 후보는 도덕성에 흠 잡힐 인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김 후보는 어쩌면 총리보다 도덕성이 더 많이 요구되는 대법관과 감사원장 임명 때 각각 검증을 통과했다. 또 200항목의 검증 기준과 청와대의 모의 청문회까지 통과했다니 도덕성이 크게 문제되진 않을 듯싶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총리 후보를 소개할 때는 도덕성은 기본이어서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고, 그의 능력과 경륜을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낙점 제1의 기준이 도덕성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다는 반증이며, 이번의 경우 김 후보의 도덕성만 부각되면서 능력과 자질이 평가절하될 우려도 없지 않다.

김 후보 지명에 대한 민주당의 첫 공식 반응은 차라리 코미디다. 김 후보가 전남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하여 “영남 독식 인사 해소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부의 영남 편중 인사가 논란이 된다 해도, 후보의 도덕성과 능력 등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제1야당이 미리부터 호남 출신 후보라는 이유로 봐주겠다는 냄새를 풍긴 셈이다. 그러면 김태호 후보는 영남 출신이어서 낙마시켰다는 말인가. 뒤늦게 “출신 지역에 따라 잣대가 달라질 순 없다”는 등으로 말을 바꿨지만 속내는 이미 다 들켰다.

자꾸만 작아지는 총리

그렇지 않아도 총리 역할에 대한 평가가 별로인 게 오늘의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스타일인데다, 여권에 실세 장관이니 보이지 않는 손이니 하며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있어 총리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또 임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레임덕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권력의 법칙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총리 자리가 후보 지명 과정에서부터 청와대와 야당에 의해서까지 작은 모습으로 취급되는 건 국가권력의 적정한 배분과 관련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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