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삶의향기

[삶의 향기-임한창] 감사하는 믿음

[삶의 향기-임한창] 감사하는 믿음 기사의 사진

어느 사막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 집은 울창한 야자수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당 한복판에는 작은 샘이 있었다. 사막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이곳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나무 그늘에서 피로를 풀었다. 노인은 나그네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사막 한가운데 울창한 야자수 숲과 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가끔 나그네들이 감사의 표시로 동전을 건네주었다. 노인의 금고에 돈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는 욕심이 생겼다. 금고에 동전이 가득 차면, 그 돈으로 넓고 큰 집을 지으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사막을 떠나리라. 노인은 나그네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나그네들은 더 이상 노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았다. 예전처럼 물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마구 낭비했다. 어느 날, 노인은 샘물이 점점 말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과욕이 비극을 부른다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어. 샘물을 오랫동안 보존하려면 야자수를 잘라내야 한다. 조금만 더 물을 팔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야.”

노인은 야자수를 모두 베어냈다. 사막에는 야자수의 시원한 그늘이 사라졌다. 샘물도 곧 말라 버렸다. 이제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숨지고 말았다. 과욕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성경은 탐욕이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쾌하게 경고하고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장 15절)

사람은 신비로운 존재다. 제 스스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남을 즐겁게 해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됐다. 행복을 얻으려면 먼저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마음으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행복은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사탄은 불평하는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영혼을 파멸시킨다. 노르웨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기란 아주 쉽다.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절망적 상황에서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고통당할 때 흘리는 ‘감사의 눈물’은 ‘약속의 무지개’가 된다. 하나님은 항상 고통 뒤에 축복을 예비하신다. 고통 없이 주어지는 것은 대부분 무가치한 것들이다.

영어의 ‘감사(thank)’는 ‘생각(think)’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간에서 출발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자유롭게 찬송을 부를 수 있고, 컴퓨터로 지구상 뉴스를 검색할 수 있고, 따뜻한 밥을 항상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정도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과연 지구상에 몇 퍼센트나 될까.

추석 연휴 때 침수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다. 우울한 명절을 보냈으리라. 비에 젖은 가재도구를 씻어내는 주부에게 어느 기자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통 뒤에 축복이 있다

“무척 힘드시겠어요.”

“괜찮아요.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요.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로 했어요.”

짧은 인터뷰에 큰 감동이 밀려왔다.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깃든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긴다. 사막과 같은 인생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야자수가 있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샘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어나가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천국은 감사의 문을 통과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감사의 사람이 자신과 주변을 행복하게 만든다.

임한창종교국장 hcl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