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시대정신 담긴 비전을 보고 싶다 기사의 사진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여.”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가 정치 현역일 때 즐겨 쓰던 속담이다. “내일 일을 얘기하면 귀신이 웃는다고 했어.” 김종필 전 총리가 역시 정치 현역일 때 즐겨 쓰던 일본 속담이다. 해방, 전쟁, 혁명, 쿠데타, 유신, 대통령 시해, 군부와 민주세력 간의 유혈 충돌 등 온갖 풍상을, 그것도 대부분 정치 일선에서, 다 겪은 풍운아들의 말이어서 더 무게 있었다.

흥행 안 되는 전당대회

민주당 전당대회가 10월 3일이니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전당대회는 2012년에 실시될 19대 총선·18대 대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민주당으로서는 그 의미가 자못 심각하다. 특히 당권 도전자들은 당권을 대권의 교두보로 삼는다는 전략 아래 혈투를 벌이고 있다.

때문에 당 내에서는 과열 혼탁 등의 시비가 나올 정도로 전대가 뜨거운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아냥거림이 말해주듯 일반 국민의 관심은 냉랭하다.

시합이 흥행에 성공하려면 이긴 팀에게 돌아가는 상이 큰 빅 매치여야 하고, 팀에 스타플레이어가 있어야 하며,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실력을 가진 팀 간의 대결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민주당 전대는 이러한 흥행 요소들을 갖추지 못한 듯싶다. 한마디로 이번 당권 경쟁자들 중에 스타플레이어, 즉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여당 내 박근혜 전 대표 등에 맞설 만한 대권 후보가 없어 빅 매치가 될 수 없다고 여겨져 관중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세균 전 대표, 정동영, 손학규 고문 등이 이른바 빅3로 불리며 경쟁하는 양상이나 대권 후보로서는 극복해야 할 큰 핸디캡들을 갖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아직 미미하여 민주당이 불임정당이라는 소리마저 듣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2012년의 대권 경쟁이 끝났다고 한나라당이 자만할 일도, 민주당이 자포자기할 일도 아니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겨우 1%에서 1.8%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했던(한길리서치) 노무현씨가 2002년 12월 선거에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권 주자들이 2002년 대선에서 용기를 얻는 건 좋으나 그 선거가 매우 특이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먼저 노무현씨는 2000년 4월 총선에서 지역구도 타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 가능한 종로를 포기하고 낙선이 확실시되는 부산을 택하는 ‘바보 같은’ 결단을 내렸다. 낙선 후 그를 보는 국민의 눈이 달라졌고, 지지율은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386을 중심으로 열혈 팬클럽이 생겼다. 그래도 민주당에선 2002년 봄 대선 후보 경선 직전까지 이인제씨가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씨와 큰 차이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인제씨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씨에게 지지율이 계속 10% 안팎 뒤졌었다. 여기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항마를 바꾸기로 결정함으로써 노무현씨를 후보로 뽑는 대역전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역전 드라마의 흥행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반면에 이회창 후보는 15대 대선의 패인이기도 했던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다시 도지고, 노무현과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를 막지 못하는 등 보수 세력을 끌어안는 데도 실패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을까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천둥 번개 치고 비가 내리려면 구름이 충돌하는 쇼크가 있어야 한다. 대선까지는 앞으로도 2년 넘게 남았다. 그 기간에 한나라당에 어떤 악재가 터져 민주당을 도울지, 시대정신을 담은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새 지도자가 혜성같이 나타나는 등 민주당에 눈이 번쩍 뜨이게 할 호재가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의 전당대회만 봐서는 천둥 번개 치고 비 내리는 이변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게 솔직한 느낌이다. 당권 경쟁 후보들이 정권 탈환을 외칠 뿐,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비전이 안 보이고 나라를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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