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이야기] 고약한 냄새로 살아남은 은행나무 기사의 사진

한가위가 지나자 아침저녁 바람이 차갑다. 이 바람결 따라 거리의 은행나무 잎들은 노랗게 물들면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와 함께 은행 껍질에서 풍기는 고약한 악취는 어쩔 수 없이 거리에 퍼질 게다. 은행나무는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먹을거리로서도 긴한 나무임에 틀림없지만 열매 냄새만큼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골칫거리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은행 열매는 당연히 암나무가 맺는다. 고약한 냄새를 피하려면 가로수로 처음 심을 때 수나무만 골라 심으면 된다. 그러나 은행나무의 암수 구별은 쉽지 않다. 나무가 일정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 암나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맺지 않는다고 수나무로 단정하는 것도 정확한 방법은 아니다. 주변에 수나무가 없으면 암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수나무에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암나무에서 피어난 암꽃에 닿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보아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적어도 암나무 주위 반경 4㎞ 안에 수나무가 있어야 한다.

은행 열매는 맛이 좋고, 영양도 풍부해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은행은 열매 자체가 씨앗이어서 과육은 짐승의 먹이가 되고 딱딱한 씨앗은 배설물로 배출되는 사과나 배와는 다르다. 짐승에게 먹히고 나면 애써 맺은 씨앗의 목적인 번식에는 실패하게 된다. 결국 은행나무는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대개의 짐승들이 싫어하는 악취를 풍겨 접근을 막는 자구책을 선택했다. 이 냄새는 3억년 전 이 땅에 자리잡은 은행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전략이었던 것이다.

은행의 냄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서울 성균관 문묘의 은행나무에 남아 있다. 열매를 맺던 암나무가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옛날에 이곳의 선비들은 은행이 맺힐 때면 고약한 냄새와 은행을 주우려는 동네 아낙들의 법석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선비들은 이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되도록 하늘에 빌었다고 한다. 기도가 하늘에 전달됐는지 이듬해부터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로 성을 전환했다는 이야기다.

성을 전환하는 식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은행나무가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건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은행나무와 가까이 살아온 조상들이 은행나무의 특징을 흥미롭게 전하고자 지어낸 이야기이지 싶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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