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8) 모쪼록 한가위 같아라 기사의 사진

그림 그린 날짜가 위쪽에 적혀 있다. ‘갑자 중추에 김두량이 그리다(甲子仲秋金斗樑寫)’ 갑자년은 1744년이다. 중추는 가을이 한창인 무렵, 곧 음력 8월이다. 그림에 보름달이 뜬 걸로 봐 때는 한가위일 테다. 지금 우리는 266년 전 추석을 맞은 조선의 어느 숲속 풍경을 보고 있다.

나무는 헐벗어 앙상하다. 시난고난 쪼들리던 잎사귀는 오간 데 없고 게 발톱처럼 뾰족한 잔가지들이 어지럽다. 야트막한 바위 뒤로 흐르는 시냇물은 무엇에 쫓긴 듯 물살이 빠르다. 둥두렷이 솟은 보름달을 떠받치는 뒤편 나무들은 가지를 벌린 채 섰고, 허리춤에 몽개몽개 피어난 밤안개는 수풀 너머를 감춘다.

스산한 정경이 가슴에 파고드는 그림이다. 그리는 재주 하나만 치면 으뜸가는 숙수(熟手)의 솜씨다. 김두량이 그런 화가다. 대물림한 화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도화서에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직급인 종6품 별제를 지냈다. ‘남리(南里)’라는 호도 임금에게 받았다. 그의 개 그림은 살아서 컹컹 짖을 듯 빼닮았고, 그의 소 그림은 음메 소리가 들릴 듯 또바기 다가온다. 마침가락으로 본 이 그림처럼 평면에 깊숙한 공간감을 드러내는 기술 또한 동떴다.

조선 화단은 문자 속 깊은 문인화를 떠받들었다. 잘 그려도 알갱이가 없으면 나무랐고, 겉모양을 따르는 직업 화가를 얕잡아봤다. 김두량의 그림은 구성과 포치에서 나무랄 데 없이 사개가 맞다. 그럴싸한 풍경에 충실하다. 하여도 어쩌자고 이토록 쓸쓸한 한가위인가. 나무는 가을 한랭한 기운에 뼈골이 시리다. 달빛이 그나마 은성하다. 그리해 애옥살이 세상도 견딘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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