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기번, 공중곡예의 달인 기사의 사진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 이른 아침에 동물원은 부산스럽다. 하루 종일 누워있을 것 같던 사자, 호랑이도 맹수의 위엄으로 으르렁거리며 영역을 순찰하고, 작은 새부터 해양관 물개까지 소리 높여 운다. 그중에서 동물원 소란에 가장 큰 몫을 하는 동물은 긴팔원숭이 기번이다. 그 누구도 기번만큼 동물원 전체가 울리도록 큰 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골계, 토종닭 등 온갖 종류의 닭들이 있지만 동물원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닭이 아니라 기번이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수컷이 흉강을 부풀리며 맑은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옆에 있는 암컷이 따라 울면서 기번들의 독특한 합창이 시작된다. 기번들은 2000∼5000Hz나 되는 맑고 고운 노랫소리로 열대 밀림의 빽빽한 나무숲을 뚫고 멀리까지 자신의 영역임을 알리고 서로간의 유대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아침 합창이 끝나고 나면 먹이를 찾아 이동을 시작한다. 20∼30m 높이의 나뭇가지 위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두 팔로 마치 곡예사가 공중곡예를 하듯 우아하게 방향을 바꾸며 빠르게 이동한다. 긴팔원숭이라는 이름처럼 몸길이의 2.3∼2.6배나 되는 팔과 잘 발달된 어깨관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번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는 두 팔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 기번은 이동시간의 90%를 팔로 매달려 있고, 먹을 때, 휴식을 위해 멈춰 있을 때, 놀 때, 서로 털 고르기를 할 때도 두 팔로 매달려 있다.

기번의 긴팔은 먹이를 얻는 데도 이점이 있다. 기번 정도의 큰 몸집을 가진 다른 영장류들에게 가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과일에 접근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의 과일을 따는 일도 기번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번은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한 번에 여러 개의 나뭇가지를 붙잡아서 체중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나뭇가지 끝까지 닿을 수 있고, 팔이 길기 때문에 자리를 이곳저곳으로 옮기지 않고도 한곳에서 많은 과일을 따먹을 수 있다.

팔 길이가 20㎝ 길어지면 이동속도는 25% 증가하고, 먹이를 얻기도 쉬워지기 때문에 팔이 마냥 더 길어지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팔이 길어진 만큼 더 강력한 어깨 근육을 가져야 하고 그러면 자연히 전체 몸무게가 늘게 된다. 늘어난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팔은 더 강력한 근육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몸무게가 증가되면 몸이 시계추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기번의 팔은 중력과 원심력 사이에서 정확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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