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9) 사나운 생김새 살뜰한 뜻 기사의 사진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곱살한 가을 들국화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철따라 털갈이한 고양이는 터럭 한 올 한 올이 비단 보풀보다 부드럽고 야단스런 반점은 눈에 띄게 짙어졌다. 함초롬하게 핀 국화는 어떤가. 초추의 햇살이 반가워 대놓고 웃는 낯빛이다.



그려도 이보다 잘 그리기 어려울 테다. 국화에서 리리시즘의 본색이 풍기고 고양이에서 리얼리즘의 정수가 보인다. 국화는 향기가 나고 고양이는 생기가 돈다. ‘국수(國手)’로 소문난 변상벽이 한껏 재주 부린 가작이다. 변상벽은 초상화의 대가로 어진 제작에 참여한 덕으로 현감 벼슬에 오른 화원이다. 하지만 남은 작품은 닭이나 고양이 그림이 더 많고 뛰어나다. 오죽하면 별명이 ‘변 닭’ ‘변 고양이’였을까.

다산 정약용은 그의 닭과 고양이 그림을 보고 질려버렸다. 해서 엄청 과장한 시를 지었다. ‘암탉 그림 앞에서 수탉이 시끄럽게 짖고/ 고양이 그림 마주한 쥐들이 잔뜩 겁먹었네’ 아닌 게 아니라 고양이 낯짝은 모질고 사납다. 다문 입에서 ‘가르릉’ 소리가 새나올 듯하다. 외로 돌린 고개와 응시하는 눈매가 먹잇감을 포착한 기색이다. 노란 홍채 안에 검은 동공은 풀씨처럼 가늘어 눈썰미 밝은 옛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정오가 막 지난 눈동자다.

생김새 표독한 고양이지만 그릴 때는 살뜰한 맘씨가 얹힌다. 고양이 ‘묘(猫)’자는 칠십 노인 ‘모(?)’와 발음이 닮았다. 국화는 흔히 은거를 뜻한다. 그러니 이 그림은 ‘일흔 살 넘도록 편히 숨어 사시라’는 기원이 담겼다. 벽에 걸어놓으면 두 벌 몫을 할 그림이다. 쥐 잡고 오래 살고.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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