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스마트폰과  CEO 기사의 사진

“미세요!” 신문사에서 스마트폰을 단체로 구입했다. 개통 첫날, 진풍경이 벌어졌다. 자신을 찾는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려댔으나 받을 줄 몰라 허둥대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 어” 하며 어쩔줄몰라하는 이들에게 얼리어답터 후배들이 던지는 말. “그냥 밀라니까요.”

자고로 휴대전화라는 건 ‘눌러’ 쓰는 걸로만 알아왔던 시니어 기자들에겐 ‘밀라’는 이 지시어는 간명했으나 암호처럼 불가해한 언어였다. 하지만 이내 암호가 해독되자마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늘 닫혀 있는 이 기기는 슬쩍 밀기만 하면 알리바바의 동굴문이 열리듯 진기한 것들을 펼쳐놓았다.

그 경이로움에 놀라 나 같은 ‘기계치(痴)’조차 스마트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시장폭발력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애플이 몰고 온 스마트폰 열풍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참담한 실적을 낸 LG전자가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을 때, 또 그 자리에 오너를 앉혔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2분기 수익은 90%나 곤두박질쳤다. 그뿐인가. 3분기엔 더 악화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오너 CEO는 한국에선 선험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LG전자의 라이벌 삼성전자가 애플의 아이폰 열풍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뒤늦게라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방할 수 있었던 건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CEO 복귀가 한몫했다는 세간의 인식이 그것이다.

위기 때는 오너가 나서야 한다는 복고적 시각에 뒤통수를 때린 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였다. 이 유럽언론은 최신호(9.25∼10.1) ‘LG의 고뇌’ 제하 기사에서 LG전자가 선택한 오너 CEO 체제를 다뤘다. 분량이 많지 않은 작은 박스였지만 기사 곳곳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창업주의 손자가 LG전자를 구해낼 수 있을까’라는 소제목도 그랬고, 때마침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3대 권력 세습에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역사가 수백 년 됐고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된 북유럽의 관행에 익숙한 유럽언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정상적으로 비쳐졌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사회가 던지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반드시 오너로의 교체여야만 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핀란드 기업 노키아의 선택을 비교했다. LG전자보다 불과 이틀 전 CEO를 교체한 그들의 카드는 또 다른 전문경영인이었다. 그것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던 미국 국적의 CEO였다. 핀란드인이 아닌 첫 외국인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는 건 그만큼 절박성이 묻어난다. 이코노미스트가 ‘역동적인 인사’라고 표현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의 전범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이 혼용되고 있지 않은가. 세계적 소매체인인 월마트가 가족 경영의 대표적인 예다. 국내에서도 오너 경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해지는 추세다. 재벌을 취재하면서 누구보다도 오너 경영을 비판했던 한 전직 기자는 홍보회사를 차린 뒤 자신의 견해 수정을 고백했다. 막상 현장에서 부딪쳐 보니, 전문경영인은 과감한 투자 결정이 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카자흐스탄 은행에 대한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국민은행에 엄청난 손실을 안긴 이는 전문경영인이었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은 전횡자이기도 했지만 복지부동의 관리형 인재이기도 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상황을 뜯어보면 그 차이를 만든 건 해당기업에 분명한 오너가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었을까.

결국 전문경영인들의 실패와 오너의 부상은 오너의 그늘이 너무 큰 탓도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위기를 계기로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추진해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노력에 조종을 울리는 건 그래서 성급하다. 전문경영인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확실한 권한 이양과 시스템 구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평가는 이르다.

손영옥국제부선임기자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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