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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칼럼] 어느 老兵의 편지

[김성기 칼럼] 어느 老兵의 편지 기사의 사진

“참전용사의 궁핍한 모습을 목격한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어떻게 생각할지…”

지난달 중순 6·25 참전용사 한 분이 이메일 편지를 보내왔다. 9월 15일자 본란 칼럼 ‘장정과 방위병’을 읽고 노병의 소회를 정리한 내용이었다(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36년 전 수용연대에서 군번도 받지 못한 장정 신분으로 여러 날을 지내면서 퇴근하는 방위병을 부러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군필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노병은 초등학교 임시교사로 경북 시골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50년 9월 군에 입대해 4년6개월 복무하고 1955년 2월 제대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업을 계속해 훌륭한 교육자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6·25 전쟁은 젊은이가 학업에 몰두할 기회와 포부를 모두 앗아갔다. 팔순 고개에 올라선 지금 노병은 무공훈장 영예수당 월 15만원을 받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장기 군복무로 인한 교육기회의 상실까지 감안하면 6·25 참전용사의 허탈한 심정은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노병은 반문했다. 세월이 흘러 눈을 감는 참전용사들이 줄을 잇는 지금도 나라살림이 어려워 수당을 올리기 어렵다는 당국 설명을 들으며 장수한다는 게 이처럼 치사하고 부끄러운 줄 예전엔 몰랐다고 한탄했다.

참전 노병들의 궁핍한 생활상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연구원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만7000여명 참전유공자에 대해 처음 전수 조사한 결과 지난해 9월 말 현재 평균연령은 80.3세, 월평균 소득 37만여원에 불과했다. 자녀들의 보조와 정부 보상금, 폐지수집 등 자잘한 소득을 합해 어렵게 생계를 이어간다는 응답자가 대부분이었다. 자녀보조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다보니 자녀들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런 부담 때문에 자녀들과 왕래마저 소원해지는 서글픈 현상까지 이 조사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2008년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에 따라 6·25와 월남전 참전용사도 국가유공자 범주에 포함되지만 대우는 국가유공자예우법이 아니라 참전유공자예우법의 적용을 받는다. 참전 사실만 인정되는 일반 유공자는 참전명예수당으로 월 9만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다만 편지를 보낸 노병처럼 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는 국가유공자예우법의 적용을 받아 영예수당 15만원을 받는다.

올해 6·25 발발 60주년을 맞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희생 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한편 유엔군 참전용사와 후손들을 초청해 한국의 발전상을 널리 알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생존해 있는 국군 참전용사나 후손들을 위한 실질적 배려에는 너무 소홀할 뿐더러 관심도 부족하다.

내년 예산안 국회 심의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친서민 복지예산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가 저출산 노령화대책으로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모든 가정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한나라당은 양육수당 지원대상도 하위 70%까지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친서민 대책을 표방하며 지원 대상을 너무 늘려 포퓰리즘 예산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참전명예수당은 월 9만원에 1만원을 더해주자는 안이 고작이다. 오죽했으면 야당으로부터 “애들 장난하나”라는 핀잔이 나왔을까.

저출산 대책과 일자리 창출, 혁신도시 건설 등 특정 사업에는 실효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생계가 어려운 참전용사들을 위한 배려에는 소홀한 정부 시책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피 흘려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의 공적은 지난 일이고 돈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여길까.

참전유공자 예우를 소홀히 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몇 푼 수당에 의지해 어렵게 여생을 보내는 노병들의 모습을 본 많은 젊은이들이 병역은 신성한 의무가 아니라 요령껏 대처해야 할 과제일 뿐이라고 여겨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노병의 편지는 “지금 군대 가는 젊은이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반만이라도 전쟁에서 요행히 살아남은 늙은이에게 기울여 달라”고 끝을 맺었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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