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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박현동] 불신의 시대, 그 끝은?

[데스크시각-박현동] 불신의 시대, 그 끝은? 기사의 사진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게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가수 타블로의 학력을 둘러싼 논쟁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당사자가 성적증명서 등 각종 증거자료를 내놨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한 발짝도 물러설 조짐이 없다. 되레 증거조작설까지 제기하며 의혹에 의혹을 보탠다. 급기야 해당 학교 측이 ‘졸업생 맞다’라며 사진까지 제시했지만 의혹은 더 부풀려지고 있다.

특정 가수의 학력 문제를 밝히라는 인터넷 카페(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상식을 벗어난다. 타블로 학력이 집단 또는 개인과 이해관계가 얽혔거나 공익성이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기에 18만명을 넘는 동조자가 생겼다.

얼마 전 SBS는 8시 저녁 뉴스에서 타블로의 학력 위조논란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한국 네티즌들은 세계 시민이 될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미국 스탠퍼드대 관계자 말을 전했다. 점잖은 표현이었지만 이런 망신도 없다. 일본의 한 유력 신문은 ‘한국의 네티즌들은 정체불명의 괴물과 같다’고 전했다. MBC도 최근 이 문제를 다뤘다. 여기서도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동문들이 타블로의 재학 사실을 증언했다. 대학 당국자도 같은 증언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흐른다. 사진합성 의혹과 언론조작 주장이 제기됐다. 인터넷의 가장 장점은 실시간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인데도 이들은 막무가내다. 타진요 회원과 동조자는 더 늘어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나도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땐 타블로의 학력에 관심이 있었다. 일개 힙합가수인 그가 진짜 스탠퍼드대를 조기에 졸업했을까? ‘엄친아’ 마케팅은 아닐까라는 의문도 가져봤다. 분명히 밝히건대 지금 나는 타블로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의 히트곡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그가 대학을 나왔건 안 나왔건, 또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타블로의 학력논쟁에 개입하고 싶지도 않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혹 일부 네티즌들이 ‘나와 타블로’의 관계를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에서다.

내 관심사는 오히려 ‘타진요’와 그 동조자들의 심리다.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해 이렇게 타블로 학력에 대해 집요할까? 타블로와 스탠퍼드대 측이 사진과 성적증명서 등등을 제시하고, 타블로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는데도 확신을 바꾸지 않은 것은 왜 그럴까? 그들이 이런 행위로부터 얻게 될 것은 무엇일까?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도 그랬다. 그의 연구업적에 의혹이라도 제기할라치면 어김없이 네티즌들의 집단 린치가 가해졌다. 일부 ‘황빠’들은 밤낮 없이 전화로 괴롭히기도 했다. ‘사기’로 판명난 후에도 그들의 맹신은 계속됐다. 객관적 사실이 바탕이 돼야 하는 과학의 영역에 개인적 신념 내지 소망을 앞세웠다. 천안함 사건도 이와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노빠’들도 비슷했다. 이들은 나 아닌 너를 인정하지 않았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노무현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으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피할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네티즌들로부터 사상비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서로 사안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즉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동지(同志)가 아니면 적(敵)이다. 다분히 군중적 행태를 띤다. 또한 맹목적이다. 그 결과는 어찌 될까? 역사는 그 폐해를 잘 말해준다. 400여 년 전인 1591년. 조선 사신으로 일본을 갔다 온 김성일은 “왜군이 조선을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조선 땅은 왜군에 유린당했다. 서인과 동인의 싸움이 심각했던 당시 김성일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보고한 것이다. 진실은 하나다. 진실은 진실 그대로 있을 뿐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회’의 끝은 위험하다.

박현동인터넷뉴스부부장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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