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상익] 졸부의식을 가진 건 아닌지 기사의 사진

“우리가 보듬어야 할 대상은 3대 세습 왕족이 아니라 고통받는 주민들”

몇 년 전 금강산을 갔었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가을 계곡물을 보면서 오를 때였다. 옆에 있는 여성안내원이 내게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가시다가 쉬셔도 좋은데 절대로 장군님의 기념비는 깔고 앉지 마세요.” 더러 붉은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눈에 띄었다. 김씨 부자가 다녀간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계속했다.

“남조선은 참 이상해요. 대통령은 집안의 최고 어른인데 어떻게 이름을 막 부르고 그렇게 욕을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진짜 이상해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난 어려서 아버지가 미울 때 뒤에서 욕을 했었는데. 옛날부터 왕도 뒤에서는 흉을 본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어요? 대통령을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 자유도 괜찮은 거 아닐까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참 그렇기도 하겠네” 하고 긍정했다. 그녀는 주위를 살핀 후 덧붙였다.

“사실 우리 인민들도 남조선의 부자 회장이 도움을 줘서 감사하고 있어요. 고맙긴 고마운데 남조선 신문은 왜 그렇게 까발리고 생색을 내는지 몰라요.”

그녀의 한마디에서 마음이 열려 있는 북한 주민과 그들의 상처 난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80대 중반을 넘긴 내 어머니의 소원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보는 것이다. 이산가족을 찾아달라는 신청을 하고 30년이 되어도 소용이 없었다. 북에서도 힘없는 사람들은 남쪽의 가족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정부로부터 접촉 허락을 받고 중국에서 대학교수 출신이라는 북한 사람을 만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 소식이라도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세계의 어디를 여행했느냐고 물었다. 북에서 해외로 나올 수 있는 그의 특권의식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 같았다. 여행이 취미인 나는 세계 오지까지 다녀본 얘기를 했다. 그는 평양의 아파트에 사는 걸 얘기하면서 내 재산을 물어보았다. 20년 변호사 생활의 평균수준인 내 생활을 알려주었다. 비슷한 나이인 그의 얼굴에서 묘한 감정이 서렸다. 남한의 평범한 변호사와 북한에서 성공한 자신을 비교해 보는 것 같았다. 북한법도 공부했던 나는 그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여러 사상서적을 읽었었다. 공산사회에서 성장한 그는 의외로 사상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되면 평양에서 러시아서적이 사라지고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고 고백했다.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게 느껴졌다.

그때 레스토랑의 옆자리에 한국인 관광객 부부가 와서 앉았다. 잠시 후 우리의 대화내용을 들은 그들은 마치 파충류라도 본 듯 얼어붙었다. 그게 우리의 또 다른 모습 같았다.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과 대한민국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결론을 낼까? 내가 만난 북한 사람으로부터 나는 그들이 남쪽의 일그러진 졸부의식을 싫어하는 것을 알았다. 바다를 알려면 한 방울에서도 그 속성을 분석할 수 있다. 굳이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아이들의 통일글짓기대회 심사를 했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북한이 못사는 것을 물으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 중 북한 아이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초등학교 2학년 꼬마의 짧은 글 한토막이 눈에 띄었다.

꼬마는 먼저 ‘코딱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별명을 지어줬지만 코를 후비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어른들의 통일얘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다정한 이웃같이 북한에 있는 아이가 남쪽 친구를 보고 싶으면 왔다가고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홉 살짜리 꼬마의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 겸손과 지혜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글에 최우수상의 의견을 냈다.

우리가 보듬어야 할 대상은 공산주의 상표를 단 3대 세습 왕족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고통 받는 주민들이다. 졸부 같은 생색내는 태도를 버려야 북한 주민들의 진정한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엄상익(변호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