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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수익] 4와 9 기사의 사진

한 국회의원이 말실수로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었다. 한 장관은 자신의 부처에 딸을 특채되도록 개입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리직 직전까지 성공 가도를 내달리던 전직 도지사가 과거 잘못된 행적으로 주저앉았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 고위 인사들의 낙마 장면들이 속출한다. 그들에게 밉고 분한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면서 그들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위안도 생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나는 언제부턴가 숫자 중 4와 9를 좋아하게 됐다. 스스로 좀 부족하자는 뜻에서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과 양 손의 열 손가락을 완전수로 보고 거기서 하나씩 부족하자는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 살기엔 그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메일 주소까지 두 숫자를 합쳐 영문자 ‘sagu’로 만들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다. 실수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고 채워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낮아지고 겸손할 수 있다.

5, 10에서 하나씩 부족한 것

너무 고고하지 말자. 아무리 뻐겨도 어차피 인생은 험로요 진창이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그분의 삶에서도 나타난다. 세리,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분은 딴지 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준엄히 꾸짖기까지 하셨다.

솔직한 눈으로 우리 모습을 보자. 연약하고 부족하다.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하지 못해 절망한다. 끊임없이 실수한다.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한다. 눈앞의 사소한 이익에 급급해 큰 유익을 놓친다. 경쟁으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다. 성경 속 위인들도 마찬가지다.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후회와 통곡으로 지샌 다윗, 어처구니없이 예수를 배신한 베드로, 형의 장자권을 뺏기 위해 아버지까지 속인 야곱…. 이런 게 좋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품자는 말이다. 동정하고 연민하자는 말이다.

주위에 고고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정체는 드러난다. 소위 민주세력이니 양심세력이니 하는 이들 가운데 비겁하고 부패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청문회장에서 고위 공직자 후보를 세워놓고 거세게 닦달하는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떨지 의문스럽다.

지난해 교회 대항 축구대회장에서 한 목회자를 보았다. 2만여 명이 출석하는 대형 교회를 담임하는 그가 교인들과 어울려 오락을 하면서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목회 성공 비결을 대충 짐작하게 됐다.

기독계가 교인 수 감소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전도를 위한 갖가지 방법이 나오고,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근본 처방은 다른 데에 있어 보인다. 세상과의 소통, 관계 개선이다. 세상과 잘 연결되고 세상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낮아지라고 하신 명령대로

그러려면 스스로 좀 약해지고 부족해질 필요가 있다. 때론 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 겉으로 고상하고 경건해봐야 득이 안 된다.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현실에서 세상과의 소통 및 관계 개선은 더욱 절실할 것 같다.

예수님이 확실히 보여주신 방향은 아래쪽이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수없이 계속 낮아지라고 하셨다. 그분은 또 겉모습만의 고상함과 입술만의 경건함에 집착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고 질타하셨다. 그분은 지금도 분명 그러실 것이다. 가식과 위선을 버리고 내면의 고상함과 경건함을 챙기라고.

지난 주말 동네 대중탕을 갔다. 나는 굳이 4와 9를 합친 49번 라커를 이용했다.

정수익 종교부장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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