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아 사역 박래수 선교사 가족 “미전도지역 현실 알리고 사명 재충전 위해 대장정”

감비아 사역 박래수 선교사 가족 “미전도지역 현실 알리고 사명 재충전 위해 대장정” 기사의 사진

아프리카 감비아 오지 마을에서 한국까지 자동차를 타고 안식년 차 귀국한 선교사가 있다. 박래수(50) 선교사와 그의 가족은 지난 6월 2일 감비아 퀴넬라를 출발해 세네갈, 모리타니, 모로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몽골, 중국을 거쳐 지난 7월 29일 한국에 도착했다. 57일간의 여정에서 중국까지 차를 이용했고 이후 항공편을 이용했다. 2만5000㎞를 직접 운전했고 3000㎞는 버스와 기차, 비행기로 여행했다.

박 선교사가 여행 도중 호텔이나 여관에 들른 것은 일주일밖에 안 된다. 대부분 자동차와 텐트 속에서 잠을 잤다. 도로가 침대였고 하늘이 이불이었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겠다고 하자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과 예장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에서 반대했다.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박 선교사는 10년째 미전도 오지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다. 200여명밖에 안 되는 작은 숲 속 마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숙명론 속에서 허망한 세월을 보내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미전도지역 선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두 달간의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목격했고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봤습니다.”

그가 사역 중인 퀴넬라는 수도 반줄에서 150㎞ 정도 떨어진 곳이다. 100% 무슬림 지역으로 만딩고족이 95%다. 만딩고족은 영화 ‘뿌리’에 등장하는 쿤타킨테족의 후예다. 주민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깊은 숙명론에 빠져 있어 인생을 거의 자포자기하며 산다.

이런 그들에게 박 선교사는 어떻게 선교를 했을까. “선교는 삶을 동반합니다. 단순히 말씀을 가르치려는 것보다는 함께 살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 주력했습니다. 현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추장을 만나 교제하면서 마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박 선교사가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감비아 선교 리서치 차 갔다가 외국 선교사나 교회가 없는 것을 발견하면서다. 미전도지역 선교에 뜻이 있었던 그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전기도 없이 생활하는 오지 중 오지였다.

감비아의 경우 도시에는 현지인이 세운 교회가 많지만 농촌 지역에는 교회가 거의 없었다. 박 선교사는 마을에 들어갈 때부터 자신을 목사로 소개했고 사람들은 좋은 일 하기 위해 온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십자가는 없지만 교회를 세웠고 유·초등생 학생부를 운영해 현재 150명의 어린이들이 교회에 나온다. 마을 이름을 딴 퀴넬라교회에는 성인 20명이 예배를 드리며 13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들이 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가난한 마을을 위해 땅콩을 보급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천민(크리스천)들이나 땅콩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루에 1달러도 안 되는 비용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절반이나 되는 상황에서 땅콩은 새로운 수입원이자 숙명론에서 벗어나는 돌파구였다.

전기가 없는 마을은 태양열 발전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아침과 저녁에만 사용할 뿐이고 우기엔 태양 발전 강도가 약해져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는 만약 힘이 닿는다면 태양열 발전 시스템을 더 보급할 계획이다. 마을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에서 기독교인으로 바뀌는 것이 쉽지 않지만 주님 오실 그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했으니 감비아의 농촌 마을에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 현지인 사역자들이 배출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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