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0) 무용지물이 오래 산다 기사의 사진

아랫도리 훌렁 벗은 배젊은 아이가 쇠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송곳눈에 두 다리의 흙뒤가 볼록 솟은 걸 보면 용쓰는 티가 난다. 소는 나무 뒤에서 앙버틴다. 코뚜레가 빠질 지경인데 저리 황소고집을 부린다.

그림에 붙은 제목 ‘역수폐우’는 ‘상수리나무가 소를 가린다’는 뜻이다. ‘장자’에서 따온 우화다. 눈 밝은 목수가 둘레가 백 아름이나 되는 상수리나무를 그냥 지나쳤다. 소를 가릴 만큼 덩치 큰 나무였다. 이 좋은 재목을 거들떠보지 않은 목수에게 제자가 까닭을 물었다. 대답이 서슴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썩고, 그릇을 만들면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물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 것이다. 쓸모가 없어 오래 산 나무다.” 하여 상수리나무는 쓸데없는 나무의 본보기가 됐다. 여말의 문인 이제현은 호를 ‘역옹’이라 했다. ‘상수리나무 노인’ 곧 ‘쓸모없는 늙은이’란 얘기다.

목수의 말은 듣잘것없는 게 아니다. 뜻이 겹이다. 그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넌지시 내비친다. 무용지물은 명이 길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잘난 사람은 망신하기 쉽다. 쓸 데 있는 재목은 꼴이 바뀌기 마련이다. 쓸모의 불운이 무릇 그렇다.

그린 이는 지운영이다. 사진술을 도입한 구한말의 서화가로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이다. 그림에 궁금한 구석이 남는다. 소는 왜 나무 뒤에 숨으려 하고 아이는 어쩌자고 끌어내려 하는가. 아등바등 쓸모를 찾아내려는 존재와 쓰임새를 마다하고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 존재 사이의 씨름일까. 소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니 딱하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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