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타계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반 총장의 화려한 이력에 빠짐없이 거론되는 사항이 있다. 바로 1997년 2월 황씨 망명 사건 때 밀사 역할을 한 일이다. 그가 외교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도,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을 때도 어김없이 회자됐다. 황씨 망명은 남과 북에게 일대 사건이었지만, 반 총장에게도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황씨 망명 당시인 문민정부 말기, 반 총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외교·국방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황씨는 베이징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고, 중국 정부는 혈맹인 북한의 반발 때문에 그가 바로 한국으로 향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중국은 적어도 1개월 이상 황씨가 제3국에 머물 것을 조건으로 그의 출국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중국의 입장을 고려, 필리핀을 통한 한국 입국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황씨의 체류 기간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필리핀은 황씨의 1개월 이상 체류에 반대했다.

결국 반 총장이 체류기간 연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97년 3월 30일 극비리에 필리핀을 방문, 피델 라모스 대통령과 담판을 지었다. 황씨는 한 달 넘는 필리핀 체류 끝에 그해 4월 20일 서울에 도착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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