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숨겨진 나라 빚’ 공개할 때다 기사의 사진

“공기업과 지자체의 방만 경영을 막고 국민에게 떳떳한 정부가 되려면”

5년 전 이맘때쯤 전윤철 당시 감사원장이 언론사 간부들을 오찬에 불렀다. 공기업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둔 설명회 자리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그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지자체의 토호세력 결탁 비리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데다 ‘전 핏대’란 별명답게 꼿꼿한 성격이니 공기업과 지자체를 꼭 손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그의 이마의 힘줄이 굵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노무현 정부가 끝나도록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그런 감사원의 노력 덕인지 현 정부 들면서 공기업 통폐합과 신입사원 임금 삭감 등 선진화 개혁이 시작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1년 전 통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정권이양기 통합 과정에서 주공과 토공의 몸집 불리기 경쟁과 국책사업 추진으로 109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부채덩어리’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이 지난 8월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LH의 부채는 2003년 20조원이 현재 5배로 불어나 하루 이자만 84억원씩 물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들은 어떠한가. 수천억원을 들여 세운 빚더미 호화청사, 자력으로는 자기네 공무원 월급조차 못 줄 정도인 재정 부실을 겪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적 재앙이 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금융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어김없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주 국감에서는 산은금융지주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1600만원으로 나타나 서민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신의 직장’이라는 한국거래소도 직원 40%가 1억원 이상 연봉자였다.

CEO들은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직원들은 비(非)급여성 후생복지로 ‘무늬만 임금 삭감’해 놓고, 실은 돈 잔치를 계속해 온 것이다.

빚만 늘린 통합, 어처구니없는 성과급 잔치, 이런 게 공기업 선진화였던 것인가. 연봉이 비교도 안 되는 다른 공기업과 공무원들을 좌절에 빠지게 하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전 정권 , 현 정권 ‘네 탓 공방’ 하고 있으니 국민에 대한 염치라곤 없는 것 같다.

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집권 중반만 지나면 용두사미로 끝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정권 실세들이 비호하는 공기업 사장, 정치권과 유착된 지자체를 감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국감 때마다 피감기관에 뒷전으로 지역개발 민원 압력을 넣으면서 대신 겉핥기 감사를 해온 국회의원들 책임도 크다. 현 정부도 비슷한 길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 눈길 끄는 해법이 나왔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이 비슷한 방안을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국감 첫날인 지난 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미국은 스마트폰으로 매일 1인당 국민 채무를 알 수 있는데 한국은 왜 정부 통계를 1년에 한 번만 발표하느냐”고 따졌다. 또 “앞으로 공기업 부채 문제는 누구의 책임인지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부 국감이 처음인데도 역대 무수한 의원들이 못했던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이한구 의원도 “숨겨진 빚(4대 연기금, 공기업·지방정부 부채 등)을 합친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무려 1637조원”이라며 정부는 이렇게 숨겨놓은 빚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드러내 놓고 직접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우리의 국가 재정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건전하다고 변명할 때가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인한 복지 예산, 남북통일에 대비한 천문학적 예산은 갈수록 무거워지는 짐이다. 게다가 이들 숨겨진 빚의 증가율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국가 부채는 ‘뒤가 구린’ 지하경제가 아니지 않은가. 미국처럼 매일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더 이상의 재정 부실을 막고 국민에게도 떳떳한 정부가 돼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CEO와 실무 책임자, 관련 국회의원의 등에 ‘국가부실 책임자’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이형용 수석 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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