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개헌 방정식 풀기 기사의 사진

고교 일반사회 시간에 정치와 법 중 어느 게 상위 개념이냐를 놓고 토론이 있었다. 권위주의 시절이어서 정치 권력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게 예사였다. 그 때문에 법치주의가 더 강조됐고, 그래서 법이 정치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게 많은 학생들의 의견이었다.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정치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만, 그 법을 만들고 또 고칠 수 있는 게 정치이기 때문에 정치가 법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 법이라는 설명이었다.

헌법은 최고의 정치 산물이다

정치적 결단의 산물인 법 중 가장 높은 게 헌법이다. 그만큼 정치적 색채가 최고로 강하고, 그래서 정치 세력 절대 다수 간에 타협이 이뤄져야 만들어지거나 고쳐지는 게 헌법이다. 정치 집합체인 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국민투표까지 거쳐야만 개헌이 가능토록 규정한 우리 헌법도 그것이 가장 높은 차원의 정치 산물임을 말해준다.

정치 환절기 신드롬인 양 정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여권의 실세 이재오 특임장관이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거론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게 아니냐는 추측과 함께, 논의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이다..

기자는 대선을 앞두고 내각제 개헌이 거론되던 18년 전 이맘때 이 난에서 “내각제 큰일 난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었다. 당시는 직선제 개헌을 한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또 개헌을 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고, 금권정치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으며, 내각제의 전제인 정당정치와 직업공무원제가 뿌리 내리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다만, 승자독식(勝者獨食 Winner takes all)의 법칙에 따라 대통령 당선자가 ‘선출된 전제군주’ 노릇을 하고, 그 때문에 선거가 전투가 되는 대통령제가 ‘언젠가’는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자는 그 “언젠가”가 지금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아직도 적극적 개헌론자는 아니지만, 전에 제기했던 내각제 위험요소들이 적잖이 불식된 대신, 대통령제의 폐단은 여전하기 때문에 개헌을 검토해볼 만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개헌의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본다. 우선 개헌에 적극적인 국회의원들이 아직은 소수이고, 개헌을 얘기하는 사람도 그 방향이 다 다르다. 권력구조 부문만 해도 순수 내각제안,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나누는 분권형 권력구조안,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연임을 허용하자는 안 등 다양하다. 특히 한나라당의 박근혜, 민주당의 손학규 등 자신의 대권 가능성을 보는 사람들은 대통령제를 바꾸는 데 반대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현재 확보하고 있는 원내 세력만으론 개헌저지선인 재적의원 3분의 1이 안 되나,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이들이 유력 후보로 굳어지면 그 세가 급팽창할 것이다. 또 개헌은 대선 이슈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데 어느 정치 세력이 개헌을 추진하다가 실패할 경우 이는 대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깃발을 들기가 힘들다. 청와대도 내심 개헌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나 자칫 박 전 대표와 충돌할까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李·朴 간 빅딜 이뤄진다면

다만, 몇 가지 여건이 조성된다면 개헌이 될 수도 있다. 먼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빅딜이 이뤄질 경우다. 예컨대 대통령이 외교, 국방 등 외치를 맡고, 내정은 총리가 맡는 분권형 권력구조로 개헌하되, 박 전 대표의 대통령 후보 보장을 약속하는 식이다. 다음, 이명박계가 개헌을 추진하는데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민주당 후보군 모두가 이를 인정할 경우다. 야당들이 연정 등을 염두에 두고 개헌 빅딜에 응할 수도 있다. 또 이 대통령이 개헌에 뜻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은 외치만 맡고 내정은 총리에게 맡기는 준내각제로 운영해보는 것이다. 그 방식이 성공하면 개헌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헌은 주요 정치 세력들의 타협을 통해서만 풀릴 수 있는 고차원의 정치 방정식이다. 그래서 해답이 없는 건 아니나 정치 세력 간 이해가 달라 그걸 찾기가 쉽지 않다. 또 개헌이 혁명적 상황에서만 이뤄졌던 게 우리의 헌정사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