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1) 이 세상 가장 쓸쓸한 소리 기사의 사진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다. 뿌듯하기는 ‘야삼경에 아들 글 읽는 소리’요, 정나미 떨어지기는 ‘아내가 악쓰는 소리’다. 구슬픈 소리는 ‘가난한 처녀가 꽃 파는 소리’, 설레는 소리는 ‘미인이 옷고름 푸는 소리’다. 그렇다면 소리 중에 가장 쓸쓸한 것은?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는 소리가 들리는 그림이다. 부들부들 떠는 소리다. 나무가 떨고 억새가 떨고, 심지어 집이 떨고 글씨도 떤다. 털이 여남은 개밖에 없는 몽당붓으로 쓱쓱 그어 글씨는 어긋나고 그림은 성글다. 몇 낱의 선과 옅은 먹빛으로 묘사한 뒷산은 흘미죽죽하고, 키 큰 나무와 억새들은 서늘바람에 내맡긴 듯이 흔덕이는 모양새다.

표표한 심회가 바로 이렇다. 덧없는 세상사에 어떤 애증도 품지 않은 마음씨라야 이런 그림이 나온다. 햇덧에 부는 바람은 잠시 산천을 둘러본 김에 인간의 속기마저 털고 간다. 꾸밈이라곤 티끌도 안 보이는 이 그림이 가슴을 치는 것은 겯고트는 세상살이와 동떨어진 허무와 적요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시냇물 흐르는 산골에 초목이 우거지다’란 뜻이다. 서른 살 못 넘기고 세상을 뜬 화가 전기가 스물네 살 때 그렸다. 그는 ‘벽을 사이에 둔 집에서 음력 7월 2일 홀로 앉아 그리다’라고 써놓았다. 요절한 화가가 가을 문턱에 홀로 빈 방에서 그렸으니 적막한 심사가 그림 속에 감도는 것은 당연할 터. 죽고 난 뒤 그의 방에는 달랑 그림 몇 점만 나뒹굴고 있었다.

하여 말할 수 있다.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소리를 남겼다. 갈바람에 서걱대는 억새 소리!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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