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환율전쟁의 이면 기사의 사진

아시아인 다섯 명과 미국인 한 명이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갇혔다. 이들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분업을 하기로 했다. 아시아인들은 각자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야생 열매를 따오고, 식사준비를 하거나 땔감을 구하고 불을 땠다. 미국인은 밥을 먹는 일을 맡았다. 다 먹은 후에는 달러라는 ‘휴지조각’으로 음식값을 지불하고 아시아인은 미국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 미국인이 없었다면 아시아인 다섯 명의 생활이 더 어려웠을까?

유로퍼시픽캐피털의 애널리스트 피터 시프가 ‘크래시 프루프(Crash Proof):다가오는 경제의 몰락에서 이익을 올리는 방법’에서 인용한 예다. 미국이 없으면 아시아의 생산자들은 할 일이 없게 된다는 논조가 만연하지만 시프는 미국인이 없어지면 아시아인들이 더 많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는 미국 경제의 붕괴 근거로 정부, 개인, 기업 채무가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저축 부족은 심각해지고, 달러 가치 하락과 미국 제조업이 쇠퇴하는 것을 들었다.

중국 경제신문 기자인 장팅빈(張庭賓)도 ‘기축통화 전쟁의 서막’에서 위안화의 큰 폭 절상은 국제 핫머니 투기를 불러온다고 경고하며 달러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가 환율전쟁터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다음 달 2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중국 때리기’에 열심이다. 2000년대 들어 위안화 절상은 미국 행정부의 단골 이슈였다. 선거가 임박하거나 대중 무역적자가 커질수록 위안화 절상 압박은 높아졌다.

달러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자(원화가치가 급상승하자) 우리 정부도 비상이다.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구가했던 기업들은 환율이 급락하면서 채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 환율 덕과 ‘승자효과’를 톡톡히 맛봤던 삼성전자 등은 D램 가격 추락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들어 영업이익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미 브라질과 태국 등은 외국인 투자자금에 대해 세금을 더 많이 물리거나 면세 혜택을 없애는 방안으로 규제하고 나섰다.

지난달 중순 엔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2조엔을 풀어 시장개입에 나섰던 일본은 추가 개입을 저울질하며 적반하장격으로 G20 의장국 자질을 거론하며 오히려 우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도 추가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면서 자국 통화가치를 낮출 태세다. 하지만 우리는 G20 의장국 체면 때문에 함부로 규제카드를 쓸 수도 없는 처지다.

국익을 위해선 선진국이나 신흥국이 따로 없다. 자국 수출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선진국과 신흥국들 간의 싸움 앞에 ‘세계 경제의 균형발전’이니 ‘국제 금융질서’니 하는 말들이 공허해 보이는 요즘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에서도 ‘중국 때리기’가 미국 경제를 살려낼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은 경제불황을 중국의 책임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환율로 인해) 중국 제품값이 20% 비싸졌다고 해서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때도 일본 엔화가 달러 대비 무려 50% 절상됐지만 미국 제품의 경쟁력은 회복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월가에서 ‘쓴 소리’로 유명한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도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한목소리로 중국에 대해 급격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잘못을 덮기 위해 중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불러놓고 잔칫상을 펴는 우리로선 손님들의 주먹다툼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전쟁을 끝낼 ‘서울 컨센서스’를 이끌어낼지 우리의 의장국 역량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명희 경제부 차장 mhee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