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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칼럼] 폭탄돌리기 농업정책

[김성기 칼럼] 폭탄돌리기 농업정책 기사의 사진

“당장 욕 먹더라도 쌀시장 관세화를 빨리 단행하지 못하면 농업의 미래는 없다”

한동안 초강세를 보였던 배추 가격이 최근 하락세로 돌아서 거꾸로 가격 폭락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배추 수급이 안정을 찾아간다는 소식은 우선 반갑지만 파동이 잊혀질 만하면 유통구조 개선과 수급안정 대책까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몇 년 뒤 가격 급등락에 따른 소동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국내 농업정책이 늘 그래왔다. 농산물 파동이나 통상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온갖 부산을 떨다가도 시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가기 일쑤였다.

배추 가격이 포기당 1만5000원까지 폭등하면서 농산물 유통구조 관련 기사가 이달 초 주요 뉴스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생산농가-산지수집상-도매시장-중·도매상-소매업체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유통구조가 비용 상승을 초래하고 밭떼기(포전거래)가 80% 이상에 달해 중간상인들이 가격을 좌우하기 쉽다는 분석이 따랐다. 필자가 20여년 전 취재했던 농산물 시장에서 달라진 게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농협을 비롯한 생산자 단체의 공동판매를 늘리고 직거래를 활성화하는 한편 장기저장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책도 비슷했다.

농식품부 장관은 전문성보다는 지역안배나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임명되는 사례가 잦다. 재임기간도 대부분 길어야 2년, 짧으면 1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농업구조와 생산성에 미칠 중장기 정책에 매달리기보다 적당히 1∼2년 지내고 무사히 이임하기를 원하는 장관이 많다.

2008년부터 한·미 쇠고기 협상에 수석대표로 나섰던 민동석씨는 저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나남)에서 국내 농업정책이 농민을 달래기에 급급한 측면이 많아 오히려 농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처방에 의존하게 된다고 술회했다. 고위 공무원들까지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두려워해 대외 농업 협상에 나서기를 꺼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국내 농업정책과 대외 협상의 기반에 보신주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10년이 넘도록 폭탄돌리기만 거듭해온 쌀시장 관세화 방안은 대표적 보신주의 사례로 꼽힌다. 우선 조용히 지나가자고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을 매년 2만여t 늘리면 쌀농사는 파탄날 것이 뻔한데도 그동안 농정을 맡은 장관 중에 누구 하나 정면 돌파를 한 이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쌀시장 개방을 늦추는 대신 MMA를 선택했다. 2004년에는 다시 쌀시장 관세화 개방을 10년 연장했다. 이런 식으로 증가한 MMA 물량이 2014년 40만8000t을 넘어서 국내 예상수요량의 10%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기상이 좋지 않아 작황이 나쁘다고 하지만 재고가 줄어들 지경은 아니다. 여기에다 의무수입 물량까지 계속 늘면 넘쳐나는 재고를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MMA는 중간에 쌀시장 관세화를 단행한다 해도 직전 연도 물량 수준은 계속 수입해야 하는 등 늦추면 늦출수록 매우 불리한 조건을 떠안아야 한다.

정부도 이런 다급한 실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쇠고기 수입 협상을 비롯한 통상정책과 4대강 사업 등 대내외 현안에서 수세에 몰리다 보니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미뤄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홍역을 치른 농식품부는 쌀시장 관세화 등 현안에 대해 ‘제발 내 앞에서는 터지지 말아 달라’는 다급한 심정으로 폭탄돌리기에 바쁘다.

지난 8월 취임한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연간 6조∼7조원 규모의 농업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쌀시장 관세화 방안도 내년 상반기까지 매듭짓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쌀시장은 농민단체들과의 합의를 통해 풀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듭된 논의에서 이견만 노출된 농민단체들과의 협의가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더 이상 합의에 매달릴 때는 지났다. 당장 욕을 먹더라도 농업을 살리는 길을 택해야 한다. 더 늦으면 돌아갈 길도 없다.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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