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재열] ‘공정사회론’ 공정하게 읽기 기사의 사진

“비로소 과녁 제대로 맞힌 화살… 지속 가능하려면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지난 시절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단계마다 뚜렷한 시대정신이 존재했다. 고도 성장기에는 ‘잘살아보세’라는 경제적 가치가, 민주화 시기에는 ‘직선과 참여’라는 정치적 가치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갈등사회에서 맴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지체됐다.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그 사회의 도덕적 용량인 사회적 자본은 GDP나 직선제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공정사회’ 담론은, 조금 뒤늦었지만 비로소 과녁을 제대로 맞힌 화살처럼 보인다. 신문의 지면마다 공정성 담론에 대한 논란으로 들끓고, 총리 후보부터 장·차관들까지 줄줄이 낙마시킨 위력으로 미루어, 시대정신에 근접한 담론은 강력한 규범적 힘을 발휘하며, 때로는 제안자조차 손대기 어려운 독자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적인 비교를 통해 볼 때 한국사회의 객관적인 갈등 소지는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불구하고 취약한 공정성 때문에 쉽게 끓어 넘치는 ‘습관성 갈등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불평등을 재는 지니계수로 보면 한국은 0.3 전후로 지난 20년간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0.6에 근접한 남미나 아프리카 혹은 0.5를 넘보는 중국, 태국보다 훨씬 양호하며 OECD 평균보다도 낮다.

반면에 세계 가치관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사회적 불신은 같은 기간 꾸준히 늘어 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고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해서도 높다. 가난하지만 평등하던 사회가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불평등이 커진 후유증 탓도 있다.

한편 갈등을 해결하는 시스템은 흔히 GDP에서 차지하는 공공사회 지출의 비중과 정부 거버넌스의 질적인 수준으로 그 역량을 가늠한다. 그런데 공공사회 지출에서 한국은 OECD 최하위 수준이고, 투명성으로 대표되는 제도의 질적 수준은 지난 20여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비유컨대 우리는 불평등보다는 불신이 주된 갈등 원인이며, 이들을 요리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밖에 없는 요리사의 처지인 것이다. 이는 적은 양의 갈등거리를 커다란 냄비로 여유 있게 요리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나 비교적 갈등거리가 많지만 냄비도 커서 요리에 어려움이 없는 대륙유럽 국가들과 대비된다.

갈등사회에 대한 처방의 요지는 갈등 소지는 줄이되 시스템 용량은 늘리는 것이다. 마침 정부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공정한 사회를 제안했다.

점차 심화되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회의 공정성’과 패자부활을 통해 ‘분배적 정의’를 확보하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미래지향적 기획으로 읽힌다.

반면에 일반 국민들은 과거의 쓰린 경험에 근거해 특권과 반칙 없는 ‘규칙의 공정성’을 원한다. 공평한 기회 이전에 사회적 강자들에 의한 특혜와 반칙, 불공정한 경쟁, 그리고 이것을 묵인하는 심판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절차적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두 가지 공정성이 모두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부가 제기한 공정성은 갈등해소 시스템의 용량을 늘리는데 기여할 것이고 그 핵심은 복지 확대에 있다. 반면에 다수 국민들이 우선적으로 기대하는 ‘규칙의 공정성’은 갈등 소지를 줄이는데 기여할 것이고, 체제의 정당성을 높일 것이다. 문제는 우선순위와 시간 전망이다.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민주화를 거치면서 권위주의를 파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스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권위를 세워 품격 있는 성숙한 사회로 나가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공정한 사회’는 최소한 향후 20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가치다. 높은 정당성을 가진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름길이 ‘투명성’ 확보를 우선하는데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재열(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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