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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라동철]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

[데스크시각-라동철]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 기사의 사진

KBS의 수신료 인상 문제가 방송계는 물론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KBS가 여권의 엄호 속에 연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다. KBS 내부에도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데 부정적인 기류가 있다. 국민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80% 이상이 인상에 반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일인데 반가울 사람이 누가 있겠나.

KBS는 수신료 인상의 명분으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들고 있다. TV 2개 채널(1TV, 2TV)과 라디오 7개 채널 등을 운영하고 있는 KBS 재원에서 수신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1.3%였다. 나머지는 2TV 광고 수입(38.5%)과 기타 수익(20.2%)이다.

인상 찬성론자들은 광고 의존도가 높을 경우 광고주를 의식한 편성이 불가피해 공영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권력에 의한 외압 못지않게 자본에 의한 외압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주장은 일면 일리가 있다. KBS는 또 2012년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무료 다채널 디지털 방송 실시, 난시청 지역 해소 등을 위한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방송이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공영방송의 재정 기반이 튼튼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인상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수신료 인상이 공영성 강화로 곧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KBS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편파방송 시비로 신뢰성이 떨어진 게 가장 큰 문제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KBS의 신뢰도는 몇 년 전에 비해 하락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는 자제하고 홍보에는 공을 들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KBS 재정 상황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할 정도로 불안정한가도 의문이다. KBS는 지난해 69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올해도 흑자가 예상된다. 직원 1인당 인건비도 지난해 8000만원이 넘었다. 재원 부담을 시청자에게 넘기기보다는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자구 노력을 충실하게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게 먼저다.

수신료 문제는 현재 KBS 이사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여당 추천 이사들은 ‘4000원으로 인상에 광고 비율은 자율’을, 야당 추천 이사들은 ‘3500원으로 인상에 광고는 현행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여야 측 이사들이 접점을 찾아 인상안을 의결하면 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와 국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하지만 KBS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심사는 편치 않다.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자구 노력을 강화하는 논의는 뒷전이고, 수신료 인상 폭과 광고비율 조정 등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정부나 특정 정파의 방송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방송이다. 그런 만큼 공정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대쪽에서 ‘코드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을 때는 지금의 야당이 찬성했고, 한나라당이 반대했다. 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이젠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공정성과 공영성을 지켜낼 수 있는 경영진을 구성하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정권의 눈치가 아니라 시청자,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여야 추천 인사를 동수로 하고, 시청자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사장선정위원회와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안은 어떤가.

수신료 인상은 KBS의 독립성 보장하고 공영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노력과 함께 가야 한다.

라동철문화과학부장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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