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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주의 옷자락 잡고

[삶의 향기-임한창] 주의 옷자락 잡고 기사의 사진

페루 어부들이 아마존 강을 항해하고 있었다. 그때 스페인 국적의 거대한 배 한 척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거나, 해적에게 약탈당한 것으로 보였다. 어부들이 급히 배 위에 올라갔다. 갑판에 수십명의 선원들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몸과 입술은 나뭇잎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해적을 만났나요? 아니면 식량이 떨어졌나요?”

겨우 정신을 수습한 한 스페인 선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적이라뇨?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했어요. 마실 물이 모두 떨어졌어요. 제발 우리에게 물을 줘요.”

페루 어부들이 아마존 강에서 맑은 물을 퍼 올려 선원들에게 먹였다. 그때서야 기력을 회복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하다가 아마존 강으로 밀려온 것이었다. 자신들이 계속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수를 구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만 내밀면 식수가 넘쳐나는 아마존 강 복판에서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은 붙잡을 것이 필요하다

인생은 긴 항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바다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태풍과 파도를 만난다. 때로는 시련의 위세에 눌려 몸을 떨고 좌절한다. 진정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거친 환경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이름의 바다다.

최근 행복 전도사로 불리던 한 여성이 남편과 동반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는 ‘루프스’라는 질병을 견뎌내지 못한 채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제 마음을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라는 비극적인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루프스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 그 이상의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고인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 이렇게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그녀에겐 뭔가 붙잡을 것이 필요했다.

기자에게도 삶이 절망의 바다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삶이 난파선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어느 목사님의 찬송시를 들었다. 눈물이 났다. 지나온 삶이 부끄러웠다. 후회스러웠다. 눈물과 함께 감사의 고백이 나왔다. 그리고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며 이 찬송시를 듣고 부르며 위로받는다.

“주님의 손길이/간절한 여인처럼/주의 옷자락 잡고/섬기게 하옵소서/이 비천한 몸/아무것도 아닌 나를/주의 옷자락 잡고/섬기게 하옵소서/주님의 옷자락으로/피 흘리신 옷자락으로/우리의 모든 허물을/용서로 덮으시는/주님의 사랑은/영원하시도다”

사람처럼 어리석은 존재도 없다. 인생이 온통 후회투성이다. 일찍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어린시절을 그리워한다. 돈과 명예와 권세를 위해 건강과 화평을 모두 망가뜨리지만, 나중에는 후회한다. 미래의 거창한 꿈을 위해 현재를 항상 불행하고 분주하게 산다.

영적 갈급함 무엇으로 채울까

사람은 영적 존재다. 영적 갈급함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사람을 창조한 분이 영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주인의 손을 잡아야 한다.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피 묻은 옷자락이 해결의 열쇠다. 주인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는데, 내가 주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짝사랑은 불행하다.

지금 생수가 넘쳐나는 아마존 강의 선박 위에서 갈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손을 내밀어 생수를 취해야 한다. 주인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한다. 붙잡을 것이 있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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