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2) 긴 목숨은 구차한가 기사의 사진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피는 꽃이 국화다. 서리가 그 꽃색을 지울 수 없고 삭풍이 그 꽃잎을 지게 할 수 없으니 국화는 버젓한 오상고절이다. 여북하면 남송의 문인 정사초가 국화 고집을 시로 읊었을까. ‘차라리 향기를 안고 가지 끝에서 죽을지언정/ 어찌 부는 북풍에 휩쓸려 꽃잎을 떨구겠는가’

하지만 보라, 이 국화가 얼마나 가여운가를. 곰비임비 놓인 바윗돌 앞에 국화는 힘에 벅찬 꼴로 서있다. 모가지는 죄다 꺾이고 잎사귀는 모다 오그라들었다. 두 그루 구드러진 가지는 곁에 노박이로 선 대나무에 기대 버틸 따름이다. 쇠망하는 국화일러니 향기인들 고스란할까. 말라비틀어진 모습은 가엽다 못해 가슴이 다 아리다.

화면 귀퉁이에 사연이 있다. ‘남계(南溪)에서 겨울날 우연히 병든 국화를 그리다’ 팔팔한 국화 다 놔두고 굳이 시든 꽃을 그린 이는 누군가. 바로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은 화가 이인상이다. 그는 함양의 옛 이름인 사근도에서 찰방 자리를 관둘 무렵, 명품 국화인 조홍(鳥紅)을 심었다. 오래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보니 국화는 잔향을 품은 채 애처로이 시들고 있었다.

이인상은 갱신못하는 국화를 옹호한다. 그는 바짝 마른 붓질로 사위어가는 국화를 그린 뒤 아는 이에게 편지로 알리기를 ‘목숨을 아끼려는 구실로 천성(天性)을 바꿔야 하는가’라고 했다. 국화는 살아남고자 욕심 부리지 않는다. 단명할지언정 절개를 저버리는 일이 없다. 이인상은 구차한 일상에 수그리는 세상을 꾸짖는 듯하다. 하여도 물음은 남는다. 강한 것이 오래 가는가, 오래 가는 것이 강한가.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