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오랑우탄의 자기관리 기사의 사진

대부분의 포유류는 외형만 보고도 성별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암수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더욱 극명해지는데, 그중 가장 극적으로 모습이 바뀌는 동물이 오랑우탄이다. 오랑우탄 수컷은 열 살 정도가 되면 번식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얼굴 양옆의 지방이 늘어나 뺨에 두툼한 패드가 생기고, 목 밑에 있는 주름이 늘어나서 울음주머니가 생기며, 몸집이 커지고 몸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이런 변신이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했는데도 1658년에 오랑우탄이 처음 발견된 이후 20세기가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밀림 속 20∼30m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 살다 보니 관찰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상당수 연구가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동물원에서 이루어졌다. 80년대에 수컷 오랑우탄의 번식생리에 대한 연구도 그중 하나이다.

이때 동물원에 있던 수컷 오랑우탄들을 조사했더니 우두머리 수컷 오랑우탄(사진 왼쪽)과 같이 있는 어린 수컷(오른쪽)은 나이가 되어도 2차성징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두머리와 떨어뜨려 놓으면 몇 달 안돼 얼굴에 패드가 생기고 성(性)성숙이 이뤄졌다. 우두머리 수컷의 무엇이 다른 수컷의 성성숙을 억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추가 연구가 진행되었고, 우두머리 수컷의 존재가 심리적 위축을 가져와서 성성숙을 억제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을 풀기 위해 매일 아침 수컷 오랑우탄의 오줌을 받아 호르몬 분석을 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어린 수컷의 성호르몬 수치가 비슷한 연령대의 2차성징이 발달한 수컷에 비해 낮았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도 낮았다. 우두머리 수컷의 목주머니에서 나오는 길고 큰 소리와 흉선에서 나오는 냄새가 페르몬으로 어린 수컷의 내분비계에 작용해서 성성숙을 억압하지만 우두머리 수컷의 존재가 어린 수컷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어린 수컷이 성성숙을 미루는 데는 상당한 이점이 있다. 어른 수컷은 무거운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무거워진 몸집 때문에 먹이를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고, 발정기에 있는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싸워야 하니 에너지소비가 많아지고 스트레스호르몬 수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열이 낮은 수컷은 우두머리 수컷과 무리한 싸움을 피하게 됨으로써 상처를 입지 않게 되고 몸집이 가벼워 먹이를 구하거나 포식자를 피하는 것이 쉽다. 우두머리 수컷이 늙거나 죽게 되어 우두머리 지위를 자신이 차지하게 될 때까지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 현명한 자기관리방법이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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