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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승만 (1) “여기는 평양 상공”… 문득 1950년 10월 악몽이

[역경의 열매] 이승만 (1) “여기는 평양 상공”… 문득 1950년 10월 악몽이 기사의 사진

“어찌해서 이토록 악은 성하고 의인은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속으로만 내지르던 절규였다. 열아홉. 채 여물지 않은 주먹은 하도 꼭 쥐어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씹고 또 씹어 입술에서도 피가 났다. 그래도 밖으로 외칠 수는 없었다.

오후 4시 반. 중국 선양을 한 시간 반 전에 떠난 고려항공 여객기가 평양 순안공항을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몇 번째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서른 번이 넘었다는 것밖에는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지난 16일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 10여 년간 서울에서 북한 장애인 돕기 사역을 해 온 미국장로교(PCUSA) 신영순 선교사와 함께 북한의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간 것이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련만, 이렇게 평양 시내를 내려다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지난 기억의 조각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1950년 10월의 나날들이다. 며칠을 실성한 사람처럼 들로 산으로 다니며 시체 구덩이마다 뒤지던 어머니가 종내 50여구가 뒤엉킨 가운데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한 날, “어떻게든 복수하겠다. 이렇게 잔인한 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이를 갈며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그나마 시신을 찾아 장례라도 치른 것이 어디냐는 친지들의 위로를 받으며 장지를 내려오던 날…. 어머니와 동생들 때문에 차마 내지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더 안으로 박혀 들어갔던 억울함과 분노는 “과연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응어리졌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왜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맹인이 되었습니까? 그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팔순을 바라보는 나는 열아홉의 나에게 요한복음 9장의 이 말씀을 전하고 싶다. ‘네가 하고 싶은 질문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고 있다’고 일러주고 싶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만나신, 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그를 보며 제자들도 같은 의문을 품었다. “이 사람은 왜 맹인으로 태어나야했습니까.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태어나 자금까지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해 보지 못했을 이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면 똑같이 힘없고 가난했을 그 부모의 죄입니까? 왜 이리 불의한 세상입니까!”

젊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절 내내 이 질문을 품고 살았다. 그 해 12월 남동생 승규의 손을 잡고 피란길에 나서며 어머니와 네 여동생을 돌아보던 날, 배고픔과 추위로 푹푹 쓰러지는 사람들 속에서 승규를 업고 걷던 날, 진해에서 입대한 해병대 막사에서 깨진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바닷바람에 몇 번이나 몸서리치며 잠 깨던 날들이면 핏발 선 분노와 함께 다시 의문이 솟아올랐다.

터널 속을 걷는 듯했다. 과연 이 어둠에 끝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나아가야 했다. 마흔 아홉에 순교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있지만 이룰 방법을 몰랐다. 학교에 가고 싶어 무작정 탈영도 했다. 2년이 넘도록 트럭 뒤에 타고 다니며 문산에서 서울까지 신학교 야간 과정을 듣기도 했다. 터널에는 반드시 출구가 있다는 막연한 신념에 기대어 무작정 걷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질문의 답은 내 안에 이미 들어 와 있었다. 내가 구한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완전한 답이었다.

약력=1931년 평양 출생, 대한민국 해병대 근무, 미국 데이비드앤앨킨스 대학, 루이빌 신학교, 예일대 신학부 졸업, 시카고 신학대학 종교사회학 박사,미국장로교(PCUSA) 총회장,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 클린턴 대통령 백악관 종교자문위원 역임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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