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서정우]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 기사의 사진

“읽고 생각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보고 느끼는 문화가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아름다운 들꽃들이 소리 없이 피었다가 말없이 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들꽃들이 피고 지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들꽃들의 형상만을 보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 아름다운 들꽃에서 어떤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생각하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있다.

모든 사물에는 형상과 본질이 있다. 형상은 눈에 잘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본질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인간적 한계 때문에 눈에 잘 보이는 것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꽃은 눈에 잘 보이는 형상이고, 뿌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형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의 본질이다. 일반적으로 형상은 본질에 영향하지 않는다. 형상에 영향하는 것은 본질이다. 그러니까 꽃이 뿌리에 영향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꽃에 영향한다는 뜻이다.

미국 서남부 지역에는 키가 90m를 넘는 레드우드라는 삼나무들이 자란다. 이 나무들은 어떤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뿌리가 옆으로 25개 이상 뻗어 한 뿌리에 여러 나무가 서로 얽혀 살기 때문이다. 뿌리가 이 나무를 이렇게 튼튼하고 강하게 만든 것이다.

눈이 있다고 해서 사물의 전체를 보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물의 형상만 보고, 어떤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본다. 영국의 서정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고 읊었다.

눈이 없다고 해서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인 미국의 여류 작가 헬렌 켈러는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나이아가라폭포견문록’을 저술했다.

그는 거기에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진동, 습기에 젖어든 솜털의 전율, 그리고 폭포의 땅울림이 자신의 깊은 영혼의 표면을 구슬로 굴리듯 흥분시켰다”고 쓰고 있다.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관현악단 ‘하트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얼마 전에 서울에서 감동적인 창단 공연을 가졌다. 기자들이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렇게 아름다운 감동의 화음을 연출하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가 보였어요”라고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해서 사물의 전체는 아니다. 속눈썹과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것과 가장 먼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속눈썹을 본 사람은 없고, 우주 현상 중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2%에 불과하다고 한다.

산속에 있으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산을 비껴 나오니 산봉우리가 보이고 계곡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물의 형상만 보고, 어떤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본다. 눈이 있다고 해서 사물의 전체를 보는 게 아니고, 눈이 없다고 해서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무엇이 영국 시인으로 하여금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게 하는가. 무엇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인 미국의 여류 작가로 하여금 가장 감동적인 ‘나이아가라폭포견문록’을 창조케 하는가.

물질은 보이는 데 반하여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육신은 보이는 데 반하여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영혼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읽고 생각하는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보고 느끼는 문화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이려고 야단들이다.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계절에 피고 지는 들꽃 한 송이에서 무엇을 보는가.

서정우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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