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43) 술주정 고칠 약은? 기사의 사진

주선(酒仙) 이태백조차 말했다. “흐르는 물은 칼로 자를 수 없고 쌓인 시름은 술로 씻을 수 없다.” 아무리 들이켜 본들 시름은 쓰린 위벽에서 다시 도진다. 양생(養生)에 도움을 주는 술은 정녕 없는가. 주법이 주효할 성싶다. 송나라 학자 소옹이 귀띔한다.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러 가노라, 반쯤만 피었을 때.’

단풍이 곱게 물든 대낮의 가을 숲. 술 취한 패거리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갓쟁이 넷이 뒤엉켜 왁자글한 난장판이다. 아무리 술배가 곯았기로서니 양반 차림새에 이 무슨 망상스런 뒤끝인가. 보아하니 상툿바람에 해롱거리는 작자가 골칫덩이다. 그는 억병으로 취했다. 갓은 팽개친 채 뒤로 뻗대며 악다구니를 쓴다.

딱하기는 덜 취한 술꾼들이다. 모주망태를 밀고 끄느라 사서 고생한다. 팔목을 잡아채며 곁부축하지만 정신 줄 놓고 해찰하는 놈은 못 말린다. 는적거리는 취객 뒤에서 뒤뿔치는 사람은 힘에 부쳐 고꾸라질 지경이다.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자빠지는 순간이 바람에 날리는 중치막 자락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졌다. 나무줄기에 움푹 파인 옹이가 참 해학적이다. 얼마나 한심한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켜본다.

영·정조 연간의 화가 김후신이 그린 풍속화다. 그는 금주령을 피해 몰래 퍼마신 양반님네의 추태를 풍자한다. 죽림칠현 중에 모주꾼인 유영이 생각난다. 그는 술 마시러 갈 때 삽을 든 하인을 늘 대동했다. 취해 쓰러지면 그 자리에서 끌어 묻으라고 했단다. 은근히 마시고 반쯤 핀 꽃이나 보면 좀 좋으랴. 고래고래 고함치는 취객들아, 속풀이 음료 대신 삽을 챙겨라.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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