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화살나무의 장한 단풍 빛깔 기사의 사진

숲이 부르는 단풍 노래가 절정을 이루었다. 도심의 가로수도 지난 여름의 초록빛을 내려놓고, 잎사귀 속에 감춰 두었던 속살을 완연히 드러냈다. 단풍은 한 해의 노동을 마친 나무가 제가끔 스스로의 한해살이를 마무리하는 축제일 수 있다. 바라보는 사람까지 더불어 즐기려 자연이 벌이는 큰 잔치다.

단풍 빛이 화려하기로는 은행나무의 노란 색과 단풍나무의 붉은 빛을 당할 자가 없다. 그러나 숲의 크고 작은 나무들을 골고루 살펴보면, 고운 빛으로 물든 나무를 더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키 작은 화살나무가 있다. 기껏해야 3m 정도 자라는 작은 나무여서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만큼 돋보이는 건 아니지만, 화살나무 잎새에 드는 단풍 빛깔은 여느 나무 못지않게 화려하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화살나무는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한 토박이 나무다. 봄에 나는 여린 잎을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고, 또 줄기 껍질을 한방에서는 여성 질환과 피부병 치료를 위한 약재로 쓰는 나무다.

화살나무라는 이름은 줄기에 붙어 있는 독특한 모양의 날개 때문에 붙었다. 줄기 옆으로 돋은 날개가 영락없이 화살 끝에 붙인 날개를 닮았기 때문이다. 한자로도 화살과 날개를 뜻하는 전(箭)과 우(羽)를 이용해, 귀전우(鬼箭羽) 혹은 혼전우(魂箭羽)라고 부른다.

줄기의 날개는 화살나무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의 결과다. 사람이 즐겨 먹듯, 화살나무는 대개의 초식동물들도 좋아하는 먹이다. 화살나무는 제대로 자라기 전에 짐승의 먹이가 되어 사라질 위험한 운명을 띠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화살나무는 자신의 몸피를 과장해서 씹어먹기에 부담스러운 굵은 줄기로 위장했다.

일정한 과장 효과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대단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날개의 위장술에 넘어가지 않는 노련한 짐승들은 적지 않다. 그러자, 화살나무는 날개를 코르크질로 만들었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은 동물이 줄기를 씹을 때, 본래의 단 맛을 상쇄시킬 만큼 불쾌한 맛을 남기려는 전략이다.

그런 간절한 생명력으로 애면글면 살아남은 가녀린 몸의 화살나무는 무사히 여름을 지내고 가을을 맞이하면 숲 속의 다른 큰 나무들 틈에 끼어 누구 못지않은 단풍을 자랑한다. 어쩌면 삶을 향한 지극한 간절함으로 살아남은 생명이기에 그가 이 가을에 펼쳐내는 붉은 빛이 더 화려하고 장하게 느껴지는 건지 모른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