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배병우] “마하티르가 옳았다”

[데스크시각-배병우] “마하티르가 옳았다” 기사의 사진

정부 당국자들이 들으면 “웬 김 빼는 소리냐”며 언짢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6일 앞으로 다가온 G20 정상회의에 큰 기대를 하지 말 일이다. 특히 초미의 관심인 환율 문제에서 그렇다.

지난 경주 재무장관회의에서 합의된 경상수지 목표제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이내’ 등의 구체적인 수치가 도입된다 해도 환율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합의의 구속성이 문제다.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민간의 경제활동에서 비롯되는 경상수지의 흑·적자 폭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 고위 관료는 “정부가 재정수지를 조정하기 어려운데 경상수지를 한도 안에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독일 등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큰 국가들의 반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주회의 당시 경상수지 목표제를 제시한 한국과 미국을 강력 비난한 독일 재무장관은 경주를 떠날 때 우리 대표단의 인사도 받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독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발하는 국가들에는 예외 규정 마련 등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선언이 느슨한 합의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선언이 힘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에는 더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 미국 지도력의 훼손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장기 금리를 낮춰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 위해 달러를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2차 양적 완화 조치를 3일 발표했다. 연준은 내년 6월 말까지 국채 매입을 통해 6000억 달러를 추가로 풀게 된다. 양적 완화는 미국의 경기부양에도 별무효과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대외적으로는 더 논란거리다. 중국 등 수출위주 발전 전략을 써 온 국가들의 통화가 비싸질 때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겠다는 구상으로, 간접적인 환율조작으로 볼 수 있다.

경주회의에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며 경쟁적 통화절하를 자제한다’고 합의해 놓고 달러를 헬리콥터로 뿌리는 식으로 방출하는 판에 미국의 지도력이 먹힐 리 없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경주회의 당시 철저히 언론을 피한 데는 이러한 ‘면구스러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조차 양적 완화 조치가 달러 가치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않는다며 버냉키 의장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오는 12일 서울회의를 마치고 정상들은 악수하고 웃으며 코뮈니케(공동성명)를 발표할 것이다. 하지만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 일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목표제라는 ‘가짜 의제’에 세계의 관심이 쏠린 것에 만족하며 달러 평가절하를 계속할 것이다. 달러 홍수로 인한 통화가치 급등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신흥경제국들을 못 본체하며.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가 주 표적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하며 위안화 절상 폭을 조금 늘리는 정도로 ‘면피’할 것이다. 일본은 엔고를 초래한 진짜 범인인 미국의 달러 증발을 비난할 담력도, 위안화 평가절하를 국제 이슈로 만들 힘도 갖지 못한 것을 자탄하며 계속 앙앙불락할 것이다.

그러면 남미와 아시아 신흥국들은? 외자에 대한 세금 부과 등 자본유입 규제 조치가 이들 국가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하티르가 결국 옳았다”는 말을 서로 속삭일 것이다. 10여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외국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다 이단시됐던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말이다.

우리 정부도 외자 홍수에 대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도입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동안 자본 자유화 담론의 선봉장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입장도 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IMF의 여러 문건에는 ‘자본 흐름에 대한 규제가 일시적이고 시장친화적인 방식일 경우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배병우경제부장 bwb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